떠오르는 중국

中 '한 자녀' 정책의 앞날

아람누리 2012. 11. 3. 12:59

 

 

                              中 '한 자녀' 정책의 앞날

중국 인구는 1911년 신해혁명 때 4억4000만명, 1949년 공산혁명 때 5억4000만명이었다. 그러더니 1953년 인구 센서스에선 6억2000만명이 됐다. 38년 동안 1억명 늘었던 인구가 사회주의 정부 4년 만에 8000만명이나 급증한 것이다. 베이징대 총장 마인추(馬寅初)는 1957년 인민일보에 '신(新)인구론'을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인구 증가는 식량 문제를 몰고 와 민생에 치명적 재앙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마오쩌둥이 점잖게 한마디 했다. "인구가 많은 게 좋을까, 적은 게 좋을까. 지금은 많은 게 좋다." 마오에게 인구 급증은 사회주의 통치가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많을수록 좋다(人多好)'는 중국 인구 정책의 중심 사상이 됐고 마인추는 얼마 안 가 베이징대 총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인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생각이 바뀐 것은 마오가 죽고 개혁·개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1980년부터다. 이 무렵 중국 인구는 10억에 육박하며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했다. 마인추 예언대로 이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는 게 큰 문제였다. '계획 생육(生育)'이라는 이름 아래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이 가차없이 시행됐다. "가정이 파괴될지언정 국가는 지켜라" "아이를 적게 낳고 돼지를 길러라" 같은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구호들이 난무했다.

▶'계획 생육'은 30년 동안 4억명의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부작용도 컸다. 지금 중국의 여자아이 대 남자아이 신생아 성비(性比)는 100대119이다. 유엔이 정한 적절한 신생아 성비 100대103~107을 훨씬 넘어선다. 친가·외가 조부모 네 명, 부모 두 명의 사랑이 아이 하나에 집중되는 '4· 2·1 현상'도 나타났다. 아이들은 자연히 '소황제(小皇帝)'라는 응석받이로 자랐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공부·일·사업·농사를 게을리하고 부모에 기대 빈둥빈둥 놀고먹는 '사불청년(四不靑年)'이 됐다.

▶중국 국무원 산하 연구기관이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의 폐지를 건의하는 보고서를 공산당과 정부에 냈다고 한다. 보고서는 저출산, 노령화, 성비 불균형을 중국 인구의 '3대 모순'으로 꼽았다.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출산 억제로 젊은 층은 계속 줄어드는 반면 장래에 이들이 부양해야 할 노년층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이다. 못하는 게 없는 중국 공산당이니 이 문제는 또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궁금하다.

         조선일보 [만물상]   김태익 논설위원 | 입력 : 2012.11.02 2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