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병역 제도
춘추전국시대
징병제가 도입, 전차중심의 전쟁대신 철기로 무장한 보병중심의 전쟁이 확산되며 각국의 병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전국시대 전쟁에 기록된 최대병력은 통일전쟁 시 진나라가 초나라를 상대로 동원했다고 하는 60만 병력이다.
진 ~ 한
진나라 때는 기본적으로 모든 국민이 2년간 군에서 근무하는 징병제가 중심이 되었다. 후한은 중국에서 직업군인의 시대를 열었다. 즉 진한(秦漢)시대 이후로 내려온 전민개병제(전 국민이 징집대상이 되는 제도)를 포기하고, 지원자나 사회하류층을 군에 편입시킨 모병제를 중심으로 군을 재편했다. 이후 중국은 농민병에 의존하는 군제에서 벗어나 군호(軍戶)를 지정해 군호 중에서만 한 가정에 한 명씩 군인을 선발한 제도나(삼국시대, 당나라, 원나라, 명나라) 거의 완전히 지원제에 의존한 군제(당나라 말기, 송나라, 청나라)를 택하게된다. 후한의 총병력은 중앙군 (수도와 국경을 지키는 직업군인) 과 주군병(지방의 치안, 방어를 담당)을 합치면 약 30만명 정도였다고 한다.
후한 정부가 붕괴되고, 정부에서 파악하는 호구(戶口)수가 후한 말기에 급감하자 더 이상 후한에서 채택했던 모병제로는 충분한 병력을 확보할수가 없었다. 따라서 조조는 유랑민, 산적, 군벌들의 사병들을 모아 군호(軍戶, 민간인과는 구분되는 군인가족)에 등록시키고 군호에 등록된 가족은 대대로 1가구에서 1명의 병사를 제공하게 했다. 2년동안만 군에서 근무했던 징병제와는 달리 세병제는 한번 병사로 등록이 되면 20세~60세까지 계속 군에서 근무해야 했고, 아버지가 죽으면 그 아들이 대신하는 방식으로, 병사직이 대대로 세습되었다.
삼국시대 ~ 당
서진이 멸망하고 이민족 왕조가 중국북부를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혼란기로 인구와 병력자원이 급격히 감소했다.이후 당나라의 기본군제는 군호(軍戶)에 등록된 병사들이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고, 1년에 일정기간을 수도에 교대로 올라가 훈련을 받는 부병제였다. 통일직후의 당나라는 아직 지방군벌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고, 중앙정부의 지배력도 지방까지 완전히 미치지 못해서 많은 수의 부병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당나라의 지배력이 좀 더 완전해지고 국가가 파악 가능한 인구수도 급격히 늘어나 서기 640년경 무렵에는 병력이 총 60만명으로 늘어났다.
세월이 지나면서 부병에 속한 병사들이 사회 하류층, 노인 등 질이 낮은 병사들로 채워지게 되자 병력의 질의 하락을 가져왔다. 이 때문에 서기 670년경 무렵부터 국경지방의 병사들은 전투경험이 풍부한 병사를 위주로 한 모병제로 채우기 시작했고, 8세기 중반 무렵에는 거의 모든 병사가 지원자로 이루어진 군대가 되었다.
송(宋)
송나라도 기본적으로는 당나라 말기와 같이 모병제로 군을 충원했다. 즉, 봉급을 주고 병사를 가려 뽑아 60세가 될 때 까지 군에서 근무하게 한 것이다. 당나라와의 차이점은 당나라 말기의 군대가 거의 지방 절도사 (고려, 조선시대의 외관직)휘하의 군대인데 반해, 송나라의 군대는 모두가 황제의 손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원(元)
몽골족이 건국한 원나라의 병역제도는 기본적으로 세병제였다. 즉 국가에서 작성한 군호(軍戶)에 소속된 가족은 1호(戶)마다 1명의 병사를 보낼 의무가 있었고, 한번 뽑힌 병사는 60세까지 군에서 근무해야 했다.
명(明)
명나라도 기본적으로 원나라의 병제를 답습했다. 즉 민간인과 구분되는 군호(軍戶)를 작성해 군호에 등록된 병사로 군대를 충원한 것이다. 원나라와의 차이점은 원나라가 군인들에게 몇 가구를 배정해 한 명의 병사를 지원하게 한 데 비해 명나라는 군인 중에 일부를 땅을 경작하게 하는 이른바 둔전제(屯田制)적 성격이 강했다는 것이다. 즉, 국경지방에서는 3명의 병사가 근무할 때 7명의 병사는 경작을 하고, 내륙지방의 방어군(근무하고 있는 병사)대, 둔전병(농사를 짓는 병사)의 비율이 2:8이었다. 명나라의 병사는 원나라와 마찬가지로 대대로 병사가 세습되는 제도였다.
청(淸)
청나라의 병역제도는 만주족 출신이 주축이 된 팔기군(八旗軍)과 주로 한인 지원병으로 이루어진 녹영병(綠營兵)으로 양분화 되었다. 청나라의 총병력은 18세기 무렵에는 총 90만 명에 달했다. 팔기군(부족군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청 건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함)녹영병(순치 황제때 설치된 것으로 청의 입관 이후 부족한 병력을 투항한 명군을 개편, 조직한 것. 완전히 한인으로 구성되었고, 병종은 보병이 대부분이었으나, 수군도 일부 있었음)
1984년 병역법을 개정하여 중국인민해방군은 의무병역제를 주로 한 지원병역제를 병용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병역제도
인구가 많은 중국은 그에 걸맞게 병역제도도 독특하다. 중국도 우리나라처럼 원칙적으로는 성인 남성은 모두 병역 의무를 지게 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인 남성이 한 번은 군에 가야 하는 우리나라의 징집제와는 사정이 다르다. 인구가 13억인 중국은 총 인구의 1%만 징집해도 현역 복무 자원이 1300만 명이 된다. 현재 중국군의 병력 규모는 230만여 명 수준이므로 병역 의무자 중 극소수만 실제로 현역 복무를 할 수 있다.
이처럼 넉넉한 인구 때문에 중국의 성인 남성 대부분은 현역이 아닌 민병(民兵)- (평시에는 가업에 종사하고, 소집에 의하여 입대하며, 매년 단기간의 훈련을 받아서 유사시에는 곧 민병대의 일원으로서 정규군을 구성함)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할 뿐이다. 현역 장병은 사실상 모병제 내지 지원병제로 운영되고 있다. 병역기간도 종래의 육군 3년, 해군,공군 4년에서 1998년 12월부터 육해공군 모두 2년으로 단축하였다. 2004년 총병력은 237만 명으로 육군 160만 명, 해군 25만 명, 공군 42만 명, 제2포병 10만 명이며 줄이는 추세에 있다.
[출처] 중국의 병역제도 (차이나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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