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 `밀착'…정치·외교·안보 '남남'
北 새 지도체제 등장으로 韓中 전략적 소통 더 절실
<편집자주: 한국과 중국이 내년으로 수교 20주년을 맞는다. 두 나라는 지난 1992년 8월 24일 베이징에서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양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이후 20년이란 짧은 기간에도 다방면에 걸친 교류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양국은 2000년 마늘분쟁, 2004년 동북공정 등 역사 왜곡 문제, 최근 중국 선장의 해경 살해사건 등으로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관계 격상을 통해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다지고 있다. 한중 수교 20년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조망해본다>
(베이징=연합뉴스) 인교준 특파원 = 내년으로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20년이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이 된 셈이다. 그러나 몸집은 훨씬 전부터 성년에 들어선 것 같다. 한중 양국의 교역 규모는 한국이 미국, 일본과의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도 크고, 한국엔 중국이 최대 교역국이다.
베이징(北京)과 서울이 항공편으로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하루 생활권'인 덕에 양국은 사회·문화 측면에서 서로 가까워져 '한류(韓流)', '중류(中流)'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다. 한중 양국 국민이 같은 동양인으로서 생김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기호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중국에서 한류의 '위세'는 놀랍다. 특히 '빠링허우(80後)'로 불리는 1980년대 태생 중국 젊은이들의 한국 문화 흡수가 빠르다.
한국 드라마·가요·영화 등의 대중문화에서 김치·고추장·라면·가전제품으로 확산하는 중국 내 한국문화 전파는 말 그대로 '광속'이다. 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쳐 한국어를 배우거나 한국 제품에 매료된 중국 신세대를 일컬어 '합한족(哈韓族)'이라는 말도 나온다.
경제적으로 양국의 상호의존도는 더 하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중국 합작 법인 등을 통해 판매하는 자동차가 100만대를 넘어선 지 오래다. 미국과 유럽의 경기 침체가 지속하는 속에서 삼성·LG·SK 등의 국내 대기업은 중국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런 탓에 국내 기업들은 다른 어느 쪽보다 한중 관계의 기류에 민감하다. 여러 방면에서 표출되는 한중 갈등이 잘못 다뤄지면 자칫 양국 무역 갈등으로 '전이'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저임금 기반 수출 드라이브로 요약되는 개발도상국의 경제 구조를 내수확대와 첨단기술 체제의 선진국 모델로 전환하려고 전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한국 모델에 집중하고 있다. 적어도 경제방면에서 한중 양국은 '공생 관계'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중 양국은 중요한 순간만 되면 틀어지기가 일쑤다. 대개 중국이 '표변'하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가 특히 그렇다. 중국의 대북 편향은 노골적이다. 중국이 한중 양국 간 '수교 관계'를 무색하게 하는 행보를 거침없이 하는 것이다.
작년 천안함 사건이 단적인 사례다. 북한의 도발이 명백해 보이고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는 상황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해당 사건이 넘어갔지만 중국은 북한 편들기로 일관했다. 결국 대북 제재를 무산시켰다.
중국이 남북한에 대한 '공평한' 외교는 고사하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주요 2개국)로서 책임있는 역할도 스스로 걷어찼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정치·외교·안보 환경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이라는 '초대형 변수' 앞에서 중국이 보인 태도 역시 실망스럽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비롯해 중국 수뇌부 9명이 일제히 베이징의 북한 대사관을 찾아 조의를 표시하면서도 관련 정세 변화에 대한 '논의'를 원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전화통화 요청을 거부했다. 외교적인 결례를 넘어 대북 편향을 통한 실리 추구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중국이 급성장한 경제력과 커진 정치·외교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근래 한국을 '경시'하는 경향도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반복되는 중국 어선의 서해 불법조업에서 그런 분위기가 역력하다. 중국 어선들이 서해의 한국 수역을 '작심하고' 침범하고 이를 단속하는 한국 해양경찰과 '전투'가 벌어지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중국 정부는 미온적이었다.
이달 초 중국 어선 선장이 불법조업을 단속하는 한국 해경을 흉기로 살해했어도 중국 내에서는 자국 어민에 대한 동정론이 거세다. 주중 한국 대사관에 공기총 격발로 추정되는 쇠구슬 공격사건이 났어도 중국 공안 당국은 '시간 끌기'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사건이 발생하고 보름 이상이 됐어도 감감무소식이다. 사건 발생 다음 날 중국 외교부는 "총격(銃擊)은 아니다"고 했다. 정식 수사도 들어가지 않은 상황에서 축소 시도부터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중 관계는 지난 20년 양적으로 가까워진 만큼 갈등과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치·외교·안보 분야는 물론 경제·사회적인 측면에서도 한중 양국이 서로 '지향'이 다른 탓에 그런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중 수교가 성년이 되는 20년이 흘렀지만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얘기다.
따라서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한중 양국에 전략적 소통을 주문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의 김정은 지도체제의 등장으로 맞게 될 새 국면에서 양국 간 긴밀한 대화와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양국은 지난 27일 개최된 고위급 전략 대화에서도 소통을 강화하자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원론적인' 수준을 크게 넘지는 않았다는 평가다.
한중 양국이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위해 현재 '큰 고비'를 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은 큰 의욕을 보이지만 한국은 그보다는 의지가 '약한' 자유무역협정(FTA) 논의는 큰 고비를 넘는 데 있어 최대 변수 중 하나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다자간 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A)에 대응하려는 목적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과의 FTA 체결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중 FTA는 경제적인 영역만이 아닌 사회·정치·문화에 후폭풍을 몰고 올 사안이라는 점에서 한국으로선 여전히 조심스럽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이하면서 새해 벽두인 다음 달로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신민재 기자 = 한국과 중국은 지난 1992년 8월24일 베이징에서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양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후 20년이란 짧은 기간에도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으로 자리매김했고 외교는 물론 정치·사회·문화 분야의 양국 교류도 급격히 확대됐다.
다음은 한중 수교 20년간의 주요 일지.
▲1992.8 = 한중 수교.
▲1992.9 = 노태우 대통령 한국 국가원수로 첫 방중, 양상쿤(楊尙昆) 국가주석과 회담 후 8개 항의 '한중 공동언론발표문' 발표.
▲1994.3 = 김영삼 대통령 방중,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회담하고 북한 핵문제의 대화를 통한 해결, 이중과세 방지협정·문화협정 체결 등 합의.
▲1995.11 = 장쩌민 국가주석 방한, 김 대통령과 회담하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 원칙 재확인.
▲1998.11 = 김대중 대통령 방중, 장쩌민 주석과 회담 후 '한·중 협력 동반자관계' 선언. '하나의 중국' 재확인.
▲2000.6 = 한국, 중국산 냉동·초산조제마늘 관세율 30%에서 315%로 인상. 중국, 한국산 휴대전화·폴리에틸렌 수입 잠정 중단.
▲2000.7 = 한중 '마늘협상안' 서명. 한국산 휴대전화 수입 중단 해제, 중국산 마늘 관세율 인하.
▲2001.6 = 한중 어업협정 발효. 수역, 입어조건, 입어척수, 어획할당량 등 조정.
▲2001.10 = 김대중 대통령 방중, 장쩌민 주석과 회담 후 '전면적인 협력 관계' 구축. 장 주석, 남북관계 개선 적극 지지 의사 표명.
▲2003.6 = 중국 광명일보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 정권' 논문 게재 논란.
▲2003.7 = 노무현 대통령 방중,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회담 후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선언.
▲2003년 말 = 중국, 한국의 최대 수출국 부상.
▲2004.2 = 한중, '고구려사 문제는 민간 차원 학술문제로 해결'에 합의.
▲2004년 말 = 중국,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 부상
▲2005.11 = 후진타오 주석 방한, 노무현 대통령과 회담 후 북핵 문제 평화적 해결 의지 재천명.
▲2006. 9 = 중국 사회과학원, 발해사를 중국사로 편입한 논문 요약본 웹사이트 게재 논란.
▲2007년 말 = 중국, 한국의 최대 수입국 부상
▲2008.5 = 이명박 대통령 방중, 후 주석과 회담 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 합의.
▲2008.8 = 이 대통령, 베이징 올림픽 참석차 방중해 후 주석과 회담.
▲2008.8 = 후 주석 방한, 이 대통령과 회담 후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 전면 추진, 한중 고위급 전략대화 정례 개최 합의.
▲2008.9 = 전남 신안군 가거도 근해서 목포해경 소속 박경조 경위, 중국 어선 승선 중 둔기에 맞아 바다 추락 후 사망.
▲2010.6 = 한국, 중국인 비자발급요건 대폭 완화.
▲2010.10 = 한국 체류 중국인 수 60만명 돌파.
▲2010년 말 = 한국, 대중국 수출액 1천억 달러 돌파.
▲2011.12 = 인천 옹진군 소청도 근해서 인천해경 소속 이청호 경장, 중국 어선 단속 중 피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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