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중국

한중 수교 20년

아람누리 2011. 12. 30. 11:24

 

 

 

<한중수교 20주년> ①`성년' 됐지만 갈 길 멀다

 

경제·사회·문화 `밀착'…정치·외교·안보 '남남'
北 새 지도체제 등장으로 韓中 전략적 소통 더 절실

<편집자주: 한국과 중국이 내년으로 수교 20주년을 맞는다. 두 나라는 지난 1992년 8월 24일 베이징에서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양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이후 20년이란 짧은 기간에도 다방면에 걸친 교류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양국은 2000년 마늘분쟁, 2004년 동북공정 등 역사 왜곡 문제, 최근 중국 선장의 해경 살해사건 등으로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관계 격상을 통해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다지고 있다. 한중 수교 20년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조망해본다>

(베이징=연합뉴스) 인교준 특파원 = 내년으로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20년이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이 된 셈이다. 그러나 몸집은 훨씬 전부터 성년에 들어선 것 같다. 한중 양국의 교역 규모는 한국이 미국, 일본과의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도 크고, 한국엔 중국이 최대 교역국이다.
   베이징(北京)과 서울이 항공편으로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하루 생활권'인 덕에 양국은 사회·문화 측면에서 서로 가까워져 '한류(韓流)', '중류(中流)'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다. 한중 양국 국민이 같은 동양인으로서 생김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기호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중국에서 한류의 '위세'는 놀랍다. 특히 '빠링허우(80後)'로 불리는 1980년대 태생 중국 젊은이들의 한국 문화 흡수가 빠르다.

   한국 드라마·가요·영화 등의 대중문화에서 김치·고추장·라면·가전제품으로 확산하는 중국 내 한국문화 전파는 말 그대로 '광속'이다. 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쳐 한국어를 배우거나 한국 제품에 매료된 중국 신세대를 일컬어 '합한족(哈韓族)'이라는 말도 나온다.

   경제적으로 양국의 상호의존도는 더 하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중국 합작 법인 등을 통해 판매하는 자동차가 100만대를 넘어선 지 오래다. 미국과 유럽의 경기 침체가 지속하는 속에서 삼성·LG·SK 등의 국내 대기업은 중국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런 탓에 국내 기업들은 다른 어느 쪽보다 한중 관계의 기류에 민감하다. 여러 방면에서 표출되는 한중 갈등이 잘못 다뤄지면 자칫 양국 무역 갈등으로 '전이'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저임금 기반 수출 드라이브로 요약되는 개발도상국의 경제 구조를 내수확대와 첨단기술 체제의 선진국 모델로 전환하려고 전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한국 모델에 집중하고 있다. 적어도 경제방면에서 한중 양국은 '공생 관계'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중 양국은 중요한 순간만 되면 틀어지기가 일쑤다. 대개 중국이 '표변'하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가 특히 그렇다. 중국의 대북 편향은 노골적이다. 중국이 한중 양국 간 '수교 관계'를 무색하게 하는 행보를 거침없이 하는 것이다.
   작년 천안함 사건이 단적인 사례다. 북한의 도발이 명백해 보이고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는 상황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해당 사건이 넘어갔지만 중국은 북한 편들기로 일관했다. 결국 대북 제재를 무산시켰다.

   중국이 남북한에 대한 '공평한' 외교는 고사하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주요 2개국)로서 책임있는 역할도 스스로 걷어찼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정치·외교·안보 환경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이라는 '초대형 변수' 앞에서 중국이 보인 태도 역시 실망스럽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비롯해 중국 수뇌부 9명이 일제히 베이징의 북한 대사관을 찾아 조의를 표시하면서도 관련 정세 변화에 대한 '논의'를 원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전화통화 요청을 거부했다. 외교적인 결례를 넘어 대북 편향을 통한 실리 추구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중국이 급성장한 경제력과 커진 정치·외교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근래 한국을 '경시'하는 경향도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반복되는 중국 어선의 서해 불법조업에서 그런 분위기가 역력하다. 중국 어선들이 서해의 한국 수역을 '작심하고' 침범하고 이를 단속하는 한국 해양경찰과 '전투'가 벌어지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중국 정부는 미온적이었다.
   이달 초 중국 어선 선장이 불법조업을 단속하는 한국 해경을 흉기로 살해했어도 중국 내에서는 자국 어민에 대한 동정론이 거세다.   주중 한국 대사관에 공기총 격발로 추정되는 쇠구슬 공격사건이 났어도 중국 공안 당국은 '시간 끌기'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사건이 발생하고 보름 이상이 됐어도 감감무소식이다. 사건 발생 다음 날 중국 외교부는 "총격(銃擊)은 아니다"고 했다. 정식 수사도 들어가지 않은 상황에서 축소 시도부터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중 관계는 지난 20년 양적으로 가까워진 만큼 갈등과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치·외교·안보 분야는 물론 경제·사회적인 측면에서도 한중 양국이 서로 '지향'이 다른 탓에 그런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중 수교가 성년이 되는 20년이 흘렀지만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얘기다.

   따라서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한중 양국에 전략적 소통을 주문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의 김정은 지도체제의 등장으로 맞게 될 새 국면에서 양국 간 긴밀한 대화와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양국은 지난 27일 개최된 고위급 전략 대화에서도 소통을 강화하자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원론적인' 수준을 크게 넘지는 않았다는 평가다.
   한중 양국이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위해 현재 '큰 고비'를 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은 큰 의욕을 보이지만 한국은 그보다는 의지가 '약한' 자유무역협정(FTA) 논의는 큰 고비를 넘는 데 있어 최대 변수 중 하나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다자간 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A)에 대응하려는 목적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과의 FTA 체결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중 FTA는 경제적인 영역만이 아닌 사회·정치·문화에 후폭풍을 몰고 올 사안이라는 점에서 한국으로선 여전히 조심스럽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이하면서 새해 벽두인 다음 달로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중수교 20주년> ②경제적 상호의존 심화

 

양국 간 교역·투자 규모 급성장
외국시장·미래산업서 양국 경쟁 치열 전망

(베이징=연합뉴스) 신삼호 특파원 = 수교 20년간 한중 관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양국 간 교역량이 크게 늘었을 뿐 아니라 교역 구조도 갈수록 상호보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아울러 투자 역시 한국에서 중국으로만 갔던 일방통행에서 중국도 한국에 투자하는 양방향 통행으로 바뀌고 있다.
   경제적으로 한국은 이미 중국과 세계 어느 다른 국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양국 간 경제성장률 상관계수가 수교 전인 1991년 마이너스에서 2010년 0.8로 나타났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경제성장률 상관계수는 한 국가의 경제성장과 상대국의 경제성장 간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지표로 최고치는 1이다.   또 국가 간 경제교류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수치인 교역량은 지난 1992년 63억7천만 달러에서 2010년 1천884억 달러로 약 30배로 늘어났다. 올해는 11월까지 2천21억 달러에 이르는 등 양국 교역량이 급증하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수지도 1992년 10억7천만 달러 적자에서 2010년엔 452억 달러 흑자를 기록해 한국의 무역수지 개선에 효자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수출상대국 가운데 중국이 단연 1위이며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이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커진 지 오래다. 2010년 기준 전체 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은 25.5%인데 비해 미국은 10.7%, 일본은 6.0%에 그쳤다.


   이처럼 교역량도 늘고 있지만 교역 구조를 보면 양국이 수교 20년간 얼마나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됐는지가 분명해진다.

   한국이 수교 초반엔 주로 완제품과 원자재 등을 수출하고 식품과 섬유 등을 수입하는 구조였으나 최근에는 부품, 중간재, 소재 등의 수출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중국에서 완제품을 수입하는 비중도 높아지는 구조로 바뀌었다.   중국이 전 세계로 수출하기 위한 전자나 생활용품 등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각종 반도체 등의 부품과 석유화학 소재, 중간재 등을 한국이 공급하는 역할분담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아울러 중국의 산업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자제품이나 화학제품, 기계설비 등의 한국 수출도 늘고 있으며 철강 등의 중국산 소재가 한국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등 중국의 한국 수출구조도 점차 고도화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베이징 대표처에 따르면 1992년 한국의 대중 5대 수출품목은 철강·금속, 화학공업, 섬유류, 전자·전기제품, 기타제품이었고 수입품목은 농림수산물, 섬유류, 광산물, 화학공업 제품, 철강금속 제품이었다.   그러나 2011년 1∼8월에는 5대 수출품목이 전기·전자제품, 화학공업제품, 기계류, 광산물, 철강금속 제품으로 바뀌었고, 5대 수입제품 역시 전자·전기제품, 철강금속 제품, 화학공업제품, 기계류, 섬유류로 변했다.

   투자부문의 성장도 괄목할만하다.
   한국의 중국 투자는 1992년 1억4천만 달러에 달했으나 2010년엔 31억7천만 달러로 늘었다. 올해는 11월까지 29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세계 각국의 대중국 투자액에서 한국은 1992년 16위였으나 작년에는 5위로 올라섰다. 대중국 투자누적액은 2011년 9월 현재 347억8천만 달러에 이른다.
   한국의 중국투자는 싼 인건비에 이끌려 들어온 중소기업에서부터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분야에 걸쳐 있다.

   투자 업종도 제조업뿐 아니라 은행, 보험 등 금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특히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중국에 약 30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LCD 공장을 착공하거나 착공을 추진하는 등 첨단 산업분야의 투자가 크게 늘고 있다.
   한국의 이런 대규모 투자는 중국의 전자, 자동차, 소재 등의 산업발전을 촉진하는 데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의 한국 투자는 지난 1992년 100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4억1천400만 달러에 달했다. 중국은 그동안 현대전자의 LCD 사업부를 인수하고 쌍용자동차를 샀다 되파는 등 한국 기업에도 투자했다.

   중국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한국의 부동산이나 기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으며 농업 분야나 서비스업에 투자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이렇게 경제분야에서 상호 의존성이 커진 가운데 경쟁 역시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해외시장에서 한국과 중국 제품이 부딪치고 있고 한국이 추진하는 신에너지, 전기 자동차 등 신성장 산업과 중국의 성장동력 산업이 상당 부분 중복돼 미래산업을 놓고서도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구도가 짜지는 것이다.   더욱이 경제교류가 더욱 확대되고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경제적 긴밀도가 높아지면서 양국 간 협력 속의 경쟁은 더욱 첨예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트라 베이징무역관의 박한진 부관장은 "수교 20년을 맞은 지금 한국과 중국은 협력 속에 경쟁하고, 경쟁 속에 협력하는 관계가 됐다"며 "한국의 주력 제품들이 해외시장에서 중국 제품과 경쟁하고 있으며 양국이 내놓는 미래성장 산업이 중복되는 게 많아 이런 경쟁은 미래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한중수교 20주년> ③남북관계 핵심변수 중국

 

"한국의 한반도 평화·안정 의지 中이 믿도록 해야"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한국전쟁 때 한국과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왔던 중국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20년 사이에 남북관계의 `소통로'이자 핵심 변수로 자리매김했다.
한중 수교 직후 들어선 김영삼 정부 시절 남북 고위급 대화와 노무현 정부 때 출범한 북핵 6자회담이 각각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것은 남북 모두에 끈을 가진 중국의 `거간' 역할을 잘 보여준다.
   이런 역할은 남북관계가 악화해 남북 간 독자 대화채널이 단절됐을 때 더 커졌다.
   아울러 현 정부 출범 이후 제2차 북핵실험, 천안함 사건 등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우리 당국자들이 원망 섞인 `어투'로 중국에 대북 영향력 행사를 요구한 사실은 중국이 우리 뜻대로 어찌할 수 없는, 까다로운 변수임을 확인시켰다.
이런 입지를 구축하기까지 지난 20년간 중국은 한국과 북한에 대해 정반대의 경로로 관계를 발전시켰다.

   한국과는 폭발적으로 증가한 경제교류를 앞세워 정치적 갈등요인들을 헤쳐나가는 양상이었다. 멀리는 동북공정, 가까이는 중국 어선 선장의 한국 해경 살해 등 숱한 악재 속에서도 양국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연간 2천억 달러에 육박할 만큼 성장한 한중 교역량과 떼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반면 북한과의 관계는 복잡한 한반도 안보 지형과 미·중 경쟁 같은 정치 요인이 경제 협력을 견인하는 모양이었다.
   중국이 2009년 제2차 북한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모색했을 때 오히려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견인 역할을 강화한 것은 북한의 전통적인 대미 `완충지대' 기능이 미·중 경쟁 시대에 더욱 두드러지는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포스트 김정일' 시대에 더 커질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안으로 식량난 해결과 권력기반 강화, 밖으로 국제사회 제재 돌파 등 난제를 안은 `김정은의 북한'이 대외정책의 상수 격인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유지 또는 강화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절대권력의 공백을 틈탄 군부 강경파의 입김 강화가 대남 군사 도발로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하는 한국으로서도 북한의 돌발 행동을 억제하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더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중국 변수'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게 하는 일이 한국 외교의 숙제가 됐다.
전문가들은 한중 양국이 북한의 도발 억지에 관한 한 이해를 같이하지만 대북정책의 우선순위 차이에서 발생하는 숱한 갈등 요인을 안고 있는 만큼 접점의 폭을 넓힘으로써 갈등을 극복하는 대중(對中) 외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북핵문제가 대북정책의 우선순위인 한국이 북한 핵실험 후 국제사회와 함께 대북 제재를 시도했을 때 한반도 상황 관리를 가장 중시하는 중국이 제재 대신 6자회담 재개를 요구하는 식의 `엇박자'를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결국 한국과 중국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공통분모'를 더 키우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성공회대 이남주 교수(중국어·중국학과)는 "한국의 대북정책이 중국의 전략적 이익인 한반도의 안정을 위협한다는 중국 측의 인식이 현 정부 들어 한중관계를 어렵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정부는 대중 외교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대북정책의 핵심적 목표 중 하나라는 점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중수교 20주년> ④한류는 진행형

 

드라마에서 가요·영화·한식·성형수술로 확산
일부 反한류 감정도 있지만 한류 열풍은 여전

(홍콩=연합뉴스) 황희경 특파원 = 수교 20년을 맞는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는 '한류(韓流)'를 빼놓을 수 없다.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한류'라는 표현 자체가 2000년 중국에서 시작됐을 정도로 한류는 양국 간 국민을 심정적으로 가깝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1996년 '사랑이 뭐길래' 등 한국 TV 드라마가 중국에 방영되면서 시작된 한류는 2005년 드라마 '대장금'이 방송되면서 폭발했고 이제는 드라마를 넘어서 가요와 영화, 게임 등 대중문화는 물론 한식과 패션, 화장품, 성형수술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있다.
   한류 팬을 일컫는 '합한족(哈韓族.하한쭈)'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한 한류 열풍은 중국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도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는데 '일등 공신'이 되고 있다.

   1990년대 말까지 서너 개에 불과하던 중국 대학 내 한국어과는 최근 80여 곳으로 늘었고 이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1만7천여명에 이르는 등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거세다.   또 한식은 중국인들에게 고급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식당을 찾는 중국인들은 대부분 고소득층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한식당도 일본, 유럽 등 선진국 식당들과 비슷한 정도의 고급식당으로 분류된다.
   한식당의 고객 대부분도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이 차지할 정도로 현지화에도 성공했다.

   한류 열풍은 의료관광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류의 영향과 한국의 뛰어난 의료기술 수준이 알려지면서 성형수술을 받으려고 한국을 찾는 중국인의 숫자가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 한국을 찾는 중국인의 수는 처음으로 2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과거에는 조선족 동포 중심으로 일자리를 얻으려 한국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관광과 비즈니스 목적의 중국인 방문이 대세가 되고 있다.   중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에서도 한국인이 단연 으뜸이다. 중국 국가여유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 1박 이상 머문 관광객 중 한국인이 408만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양국인들의 활발한 교류에 힘입어 한중간 항공노선은 조만간 한일노선을 제치고 항공사들의 최대 황금 노선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려는 이른바 '한풍(漢風)'이 불기 시작했고 중국인 유학생과 중국 관련 행사가 크게 늘었다.
   그러나 한류는 양국 간 정치·외교·경제 상황 등 외부 조건에 따라 부침을 겪기도 했다.
   중국은 2006년 한국 드라마의 자국 내 방영횟수를 크게 줄이기도 했고 맹목적인 한류에 경계와 자성을 촉구하는 반한류(反韓流) 주장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2008년 쓰촨(四川) 대지진 당시 한국의 일부 누리꾼들이 올린 악성 댓글 등의 여파로 중국인들의 반한감정이 폭발하면서 중국인들 사이에 한국과 한국인을 무조건 싫어하는 이른바 '혐한기류'가 생겨나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해 6월에는 중국 누리꾼 10만여명이 인터넷 사이트들에 한류 팬들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고 한국 정부 사이트와 한류 스타들의 홈페이지 등 수십 개 사이트를 해킹하는 사건도 발생해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중국에서의 한류가 계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한류는 한국 대중문화가 갖는 경쟁력 때문이었기도 하지만 중국 내에 이를 대체할만한 대중문화가 없었던 상황에서 퍼져 나간 만큼 시간이 지나면 1990년대 중국을 휩쓸었던 '일류(日流)'가 그랬던 것처럼 퇴색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일부 한국인들이 갖는 문화적 우월의식 또한 문제로 제기되기도 한다.   아이슈광(艾曙光)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이사는 "한류가 중국, 일본, 동남아를 휩쓸 때 일부 한국 문화학자들은 이 현상이 중국 현대문화가 상당히 빈약하고 낙후된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겼다"며 "이런 우월의식이 중국인의 반감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는 가요와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선호로 이어지면서 중국 내에서 양국을 문화적·정서적으로 가깝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한중수교 20주년> ⑤한·대만 '앙금의 20년'

 

문화·교역 중요 파트너…"발전적 미래 고민해야"

(타이베이=연합뉴스) 류성무 특파원 = 한중 수교(修交)에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 한·대만 단교(斷交)의 역사다

   전통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한국과 대만이 한중 수교를 계기로 공식 외교관계를 중단한 지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을 떠올려 보면 세상이 두 번씩이나 변할만한 시간이 흐른 셈이다.

   양국의 외교관계가 중단된 것은 1992년 8월 23일. 한중 수교가 있기 하루 전날이다.
   대만은 항공기 운항 중단과 한국산 과일 수입 거부, 자동차 수출쿼터 취소 등의 보복 조치를 했다. 대만 내에선 한국을 '배신자'로 규정하며 엄청난 반한감정이 일기도 했다.
   한국과 대만은 단교 1년여 뒤인 1993년 11월과 1994년 1월 각각 대표부를 상호 설치해 외교적 공백을 메우는 노력을 해왔다.
   단교 13년 만인 2005년 3월에는 국적 항공사들의 정기항공편 운항이 재개됐다.
   하지만 양국 간 앙금은 이어졌다. 1997년 대만이 핵폐기물을 북한에 수출하기로 하면서 긴장관계가 크게 고조됐다. 다행히 이 계획은 대만의 정권 교체 과정에서 철회됐다.
   지난해 광저우(廣州) 아시안 게임 당시 대만 여자 태권도 양수쥔(楊淑君) 선수의 실격패 사건, 같은 해 삼성전자의 대만 LCD패널 업체 가격담합 제보 의혹 사건 등 잊을 만하면 양국 간 갈등 기류가 등장했다.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데 이바지한 사건들도 있다. 1999년 9·21 대만 대지진 때 한국 119구조대가 활약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아파트 현장에서 3m 깊이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 있던 6세 대만 소년이 지진 발생 90여 시간 만에 한국구조대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생환하면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호전되는 계기가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 양국관계 모색이 민간 부문을 중심으로 시도되고 있다. 대표적인 연결고리가 역시 한류(韓流)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KOFICE)이 경제적 파급 효과와 호감도 조사 등을 바탕으로 집계한 대만의 한류 지수는 109점으로 일본(113점)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그만큼 대만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대만 주요 TV와 신문, 잡지 등에선 한류 스타의 근황을 잇달아 보도하고 TV 방송사들은 고정적으로 한류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타이베이에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던 한국어 학원이 최근 40여 개로 급증했다.
   관광 분야에서도 대만이 한국 방문객 기준으로 일본, 중국, 미국에 이어 4번째의 주요 관광교류 국가다. 지난해는 40만6천여명의 대만 관광객이 한국을 다녀갔다.
   경제 분야는 대만이 한국과 같은 수출 주도형 국가라는 점에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IT 산업을 중심으로 양국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대만의 5위 무역상대국이고 대만은 한국의 9대 무역 파트너다.
   전문가들은 단교 20주년이 되는 내년이 양국관계의 발전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관측했다.
   특히 '비정치 분야'라도 먼저 관계를 적극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각에선 대만이 중국의 변방에 붙은 '작은 나라'라는 피상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작고 강한 나라인 대만을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과 같이 대만과의 단교 역사를 가진 일본은 대만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최근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9월 대만과 상호 투자보장협정을 체결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항공기 운항 횟수 제한을 전면 철폐하는 내용의 항공자유화(오픈 스카이) 협정을 맺었다.

   일본 기업의 대만 진출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겨냥, 대만을 전초기지로 활용하려는 의도 등이 내포돼 있지만 대만에 대해 사실상 무관심한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2012년에는 대만 총통선거(1월)를 비롯해 중국 지도부 교체(10월) 등 중화권의 잇따른 권력이동 일정이 예정돼 있어 한국으로선 대만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할 때가 이미 눈앞에 와 있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만 전문가는 "있는 그대로의 대만의 실체를 직시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외교, 안보 분야가 부담스럽다면 적어도 문화, 관광, 청소년, 학술 등 비정치적인 부문에서의 교류는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중수교 20주년> ⑥전문가 제언

 

"南北 풀어야 韓中 풀려"…"긴 안목으로 민간교류 확대"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한국과 중국은 수교 후 20년 사이에 경제 및 인적교류를 중심으로 `상전벽해'의 관계 개선을 일궜지만 급변하는 주변환경 속에 앞으로 적지 않은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한국과 중국의 전문가들이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특히 갈수록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이 대외정책의 `상수'로 삼는 한미동맹을 한중관계 발전과 어떻게 조화시킬지를 고민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중 간 갈등의 뿌리를 없애려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평화·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수교 20년 `경제는 뜨거웠지만…' = 지난 20년간 양국관계에 대해 정재호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상호 이익이 맞아떨어진 경제영역을 중심으로 긍정적인 성과가 많았다고 본다"면서도 "외교·안보에서는 딱 맞아떨어지는 이익의 접점을 찾지 못한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천안함·연평도 사건 때 (북한의 책임을 지적하지 않은) 중국의 대응이 말해주듯 우리가 한중관계의 현실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봐왔던 것은 아닌가, 양국관계와 관련한 우리의 국익이 경제주의적으로만 흘렀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한다"며 "수교 20년을 맞은 지금 양국관계를 정리하자면 경제는 여전히 뜨겁지만 외교는 미지근하고, 안보관계는 냉랭하다고 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중국 칭화(淸華)대 국제문제연구센터 류장용(劉江永) 교수는 "중한관계는 양국 경제의 비약적인 성장과 더불어 20년 사이에 두드러지게 발전한 것이 사실"이라며 "양국 관계는 밥그릇과 숟가락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가깝다"고 평가했지만 "사회제도, 이념, 한반도 문제 등과 관련해 의견일치를 보지 못한 대목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연간 교역규모 2천억 달러에 육박하는 양국의 경제교류가 유지 또는 확대될 것이라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특히 수교 20주년인 2012년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시작돼 결실로 이어진다면 경제 교류는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한·미·일 대(對) 중·북의 대치구도가 심상치 않은 한반도 안보 지형에 비춰볼 때 한중간 정치, 안보상 갈등 요인이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 강화한다는 것을 외교정책의 기조로 정했는데, 이것은 궁극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한다는 의미"라면서 "안보상 한미가 동맹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미중관계가 냉각되면 한중관계는 좋아지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정재호 교수는 급부상한 중국이 한국에 힘을 투사하는 시나리오를 우려했다. 그는 "한중관계가 한미관계와 유사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중국이 우리에게 미국만큼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한국에 중국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반면 중국은 한국을 장기판의 말 하나로 여기는 `인식의 격차'가 발생할 수 있고 중국이 (미국이 그러하듯) 우리에게 갈수록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다"며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21세기에 맞는 호혜적이고 평등한 관계로 설정하려 하지 않고 청일전쟁 이전의 종속적 관계로 가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남북관계 풀어야 한중관계도 풀려" = 전문가들은 `전략적 협력동반자'라는 한중관계의 타이틀이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게 하려면 외교 및 안보와 관련한 접점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면서 남북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흥호 교수는 "북한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기본 방침을 중국이 획기적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 한중관계를 심화·발전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고, 류장용 교수도 "남북이 심각하게 대치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 북한과 동시에 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재호 교수는 "중국에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는 안보에 필수적 존재"라며 "한반도의 안정적인 상황이 최소 10~15년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보는 중국은 남북 간의 전쟁이나 일방에 의한 흡수통일 같은 급격한 변화를 원치 않으며, 결국 현상유지를 바란다"고 밝혔다.

   즉 중국은 남북관계가 긴장됐을 때 한국편에 섬으로써 북한을 위태롭게 만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으면 대북정책과 관련한 한중 간의 마찰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이남주 성공회대 중국어·중국학과 교수는 "한국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대북정책의 핵심적 목표 중 하나라는 점을 중국에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며 "다른 영역에서의 한중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대북정책의 간극을 최소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의 동맹이자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지역패권을 향해 돌진하는 중국 사이에서 실용적인 접근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문흥호 교수는 "한미동맹은 중요하며, 당연히 유지해야 하지만 그 강도는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밝혔다. 또 정재호 교수는 "한중수교 협상 당시 한미동맹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중국이 20년이 지난 지금 한미동맹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한미동맹에 과도하게 집착하기보다는 우리의 주권과 자위력을 같이 중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장기적 관점에서 민간교류의 폭을 넓혀야 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류장용 교수는 "양국의 민간인들 사이에 광범위한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수시로 발생하는 개별 사건이 두 나라 국민의 감정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흥호 교수도 "한중관계를 단시간에 풀어가기 위해 서둘러선 안 된다"며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민간교류, 즉 공공외교를 통해 양국관계의 저변을 건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중수교 20주년> ⑦주요 일지(完)


(서울=연합뉴스) 신민재 기자 = 한국과 중국은 지난 1992년 8월24일 베이징에서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양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후 20년이란 짧은 기간에도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으로 자리매김했고 외교는 물론 정치·사회·문화 분야의 양국 교류도 급격히 확대됐다.

   다음은 한중 수교 20년간의 주요 일지.

  
   ▲1992.8 = 한중 수교.
   ▲1992.9 = 노태우 대통령 한국 국가원수로 첫 방중, 양상쿤(楊尙昆) 국가주석과 회담 후 8개 항의 '한중 공동언론발표문' 발표.
   ▲1994.3 = 김영삼 대통령 방중,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회담하고 북한 핵문제의 대화를 통한 해결, 이중과세 방지협정·문화협정 체결 등 합의.
   ▲1995.11 = 장쩌민 국가주석 방한, 김 대통령과 회담하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 원칙 재확인.
   ▲1998.11 = 김대중 대통령 방중, 장쩌민 주석과 회담 후 '한·중 협력 동반자관계' 선언. '하나의 중국' 재확인.
   ▲2000.6 = 한국, 중국산 냉동·초산조제마늘 관세율 30%에서 315%로 인상. 중국, 한국산 휴대전화·폴리에틸렌 수입 잠정 중단.
   ▲2000.7 = 한중 '마늘협상안' 서명. 한국산 휴대전화 수입 중단 해제, 중국산 마늘 관세율 인하.
   ▲2001.6 = 한중 어업협정 발효. 수역, 입어조건, 입어척수, 어획할당량 등 조정.
   ▲2001.10 = 김대중 대통령 방중, 장쩌민 주석과 회담 후 '전면적인 협력 관계' 구축. 장 주석, 남북관계 개선 적극 지지 의사 표명.
   ▲2003.6 = 중국 광명일보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 정권' 논문 게재 논란.
   ▲2003.7 = 노무현 대통령 방중,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회담 후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선언.
   ▲2003년 말 = 중국, 한국의 최대 수출국 부상.
   ▲2004.2 = 한중, '고구려사 문제는 민간 차원 학술문제로 해결'에 합의.
   ▲2004년 말 = 중국,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 부상
   ▲2005.11 = 후진타오 주석 방한, 노무현 대통령과 회담 후 북핵 문제 평화적 해결 의지 재천명.
   ▲2006. 9 = 중국 사회과학원, 발해사를 중국사로 편입한 논문 요약본 웹사이트 게재 논란.
   ▲2007년 말 = 중국, 한국의 최대 수입국 부상

   ▲2008.5 = 이명박 대통령 방중, 후 주석과 회담 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 합의.
   ▲2008.8 = 이 대통령, 베이징 올림픽 참석차 방중해 후 주석과 회담.
   ▲2008.8 = 후 주석 방한, 이 대통령과 회담 후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 전면 추진, 한중 고위급 전략대화  정례 개최 합의.
   ▲2008.9 = 전남 신안군 가거도 근해서 목포해경 소속 박경조 경위, 중국 어선 승선 중 둔기에 맞아 바다 추락 후 사망.
   ▲2010.6 = 한국, 중국인 비자발급요건 대폭 완화.
   ▲2010.10 = 한국 체류 중국인 수 60만명 돌파.
   ▲2010년 말 = 한국, 대중국 수출액 1천억 달러 돌파.
   ▲2011.12 = 인천 옹진군 소청도 근해서 인천해경 소속 이청호 경장, 중국 어선 단속 중 피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