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중국

현대 북경어( 보통화 )의 기원

아람누리 2011. 9. 28. 10:39

 

현대 북경어(보통화)의 기원(중공 인터넷)

 

困惑곤혹

 

到过北京的人都有这样的认识:北京话跟普通话不一样。普通话说得很好的人听不懂北京话,甚至电台的普通话播音员到了北京都听不懂北京话,这就是现实。这个事实说明了普通话和真正的北京话之间存在很大的差异,然而各种书上明明写着普通话是以北京话为脚本的,这给国人造成很大的困惑:普通话到底是不是北京话?普通话跟北京话到底是什么关系?
북경에 가본 사람들은 북경말과 표준어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지.표준어를 잘하는 자들도,라디오 방송인들도 북경말을 못알아 듣는다고...이게 현실이야,차이가 상당하다니까!근데 책에는 왜 표준어는 북경어에 기초한다고 써있지?우리사람도 이러니 햇갈린다 해!표준어는 북경말이 긴겨?아닌겨?도데체 표준어는 북경말이랑 무슨 관계인겨?
 
为了弄清楚北京话和普通话的关系,很多人通过各种途径去寻找答案。希望能搞清楚这个国民生活中最基本的语言问题,希望能得到一个清晰的关于普通话和北京话的概念。事实上普通话是不是北京话呢?这一点历史会告诉我们答案,因为普通话不是凭空出世的,他也是跟世界上其它所有语言一样,是从原始的语言一步一步地进化成长起来的。

북경말과 표준어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여러 방면으로 노력중이다.그럼 표준어는 북경어인감?자,지금부터 소개할 역사의 한 편락은 그 답을 제공한다.우리 표준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원시언어에서 조금씩 조금씩 진보/변화해왔던 것이다.

 

400年前的北京话:吴语

北京自建城以来经历过了许多个朝代的变迁,自古以来北京话有过多少变化?如何变化?这个问题直到现在还没有人真正考证过。从历史上讲,400多年前的明朝末年,从意大利来的传教士利马?#93;曾用罗马拼音记录了大量的当时的北京话,这些记录至今尚保存着。从利的记录中可以明白无误地看出:当时的北京话是有大量入声字并且没有zh、ch、sh等翘舌音的语言。这说明了当时的北京话不是现在的北京话,也不是现在的普通话,因为无论北京话还是普通话都不具备这些特征。同时也说明了北京话和普通话的历史都超不过400年,400年前的北京话是明朝的官话(考证为吴语)。
북경은 도시가 생긴 이래 여러 왕조의 변천을 겪어왔다.자고로 북경어에 몇차례의 변화가 어떻게 있어 왔는지에 대해서는 현대까지도 진정한 고증이 없었다.이탈리아 출신의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당시(명나라) 북경말을 로마자로 다량 기록해 놓아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그의 기록에는 다량의 입성(받침ㄱㄷㅁ)이 있고 권설음은 보이지 않는다.즉 당시의 북경말은 현재 북경말이 아니고 현대 표준어도 아닌 것이다.이는 또한 북경말과 표준어의 역사가 400년이 채 안됨을 설명한다.400년전의 북경말-명나라의 표준어(관화)-는 오방언(강남방언) 계통인 것으로 고증되었다.
 
北京出现第二语言:满语 북경의 또다른 언어:만주어

满人入关进驻北京后,为了小区的安全等政治因素,满人把紫禁城周围10里之内的汉人全部赶走而专属满人居住,这个范围称为北京的内城,而10里之外称为外城。于是,北京城出现了两个社群:满人社群和汉人社群,这是阶级、语言和居住地域等都十分分明的两个社群,北京城也就出现了两种语言:明朝官话和满语。任何语言都是跟人群一体的,当时北京的两种语言的地域差别是:内城说满话,外城说明朝官话。
만주인들은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에 진주한 후 지역안전이나 여타 정치적 문제로 자금성 주위 10리내의 한족들을 쫓아내고 만주인 전용 거주지로 삼는데, 이를 북경의 내성이라 하고 그 10리 밖은 외성이라 했다.그리하여 북경에는 완전히 다른 언어,다른 신분,다른 거주지역에 사는만주인과 한족이라는 두 집단이 병존하게 되어 각각 명나라의 표준어와 만주어가 쓰였는데,언어는 집단을 연고로 하기 때문에 당시 북경에는 내성은 만주어,외성은 명의 옛 표준어를 쓰는 지역차이가 현저했다는 것이다.
 
满语的分化——满式汉语 만주어의분화-만주인 중국어

由于满语是一种北方民族的语言,满人草原、丛林的原始生活以及满族短暂的历史文化局限了满语的成熟水平。可以说,满语是一种比较原始的语言,不论它的发音、词汇以及语法等都十分的原始和不成熟。即使在北京,满语也难以满足日常生活使用的需要,北京的动植物、建筑、日常用品等很多东西都是满人见所未见、闻所未闻的,这些东西用满语都很难描述和交流。在满人和汉人之间是这样,在满人跟满人之间也同样无法把日常生活所碰到的东西表达清楚,至于象汉人的建筑工程用语、艺术语言、医学及其它科技用语等高级语言使用则更加无法表达,当时的形势是满语在北京面临无法交流的危机。
만주어는 초원과 삼림을 떠돌던 북방민족의 언어이다.원시적 생활방식과 짧은 역사는(문화생활?한족의 관점임) 만주어 성숙의 장애였다.발음,어휘,문법등 어디를 보아도 만주어는 원시언어라 할 수있다.북경에서도 만주어는 일상생활에 필요를 채워주기 힘들었다.북경의 동식물,건축,일상용품등 많은 물건들이 만주인들이 본 적도 들은적도 없는 것들이었다.이것들을 만주어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만주인과 한족 사이에서도 그러할진대,만주인끼리도 일상을 명확히 묘사할 방법이 없었다.한족들의 건축/예술/의학등 기술용어들은 더더욱 표현하기 힘들었다.당시 만주어로는 북경에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위기를 맞았던 것이었다.
 
面对有几千年历史的千锤百炼而成的汉语,满人虽然夺取了中国的政权,然而其语言却难以胜任统治中国的使命。但是满人作为中国的统治者却不得不面对要使用语言的生活政治现实。小至为了自己日常生活的表达,大至为了统治中国的政治需要,满人都迫切需要一种能很好地表达自己周围生活的语言。改造满语已经是来不及了,满人除了学习和模仿汉语之外别无他法,因此,套用北京汉人的语言(包括词汇和语音)成了唯一的选择,于是第三种北京话出现了——满人学讲的蹩脚汉语(暂且把这种语言叫做满式汉语)

만주인들은 중국의 정권을 획득했지만 만주어는 수천년 역사의 담금질을 거친 한어를 이기고 중국 통치의 사명을 이어받지 못했다.만주인은 중국통치자로서 이런 현실에 직시해야 했다.작게는 일상소통의 편의를 위해서, 크게는 중국통치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만주인은 더 북경의 일상에 친화적인 언어가 필요했다.만주어를 고쳐쓰기에는 너무 늦었다.한어를 배우고 모방하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최후에는 단어나 음운등에서 북경한족의 언어를 빌려쓰게 되었다.이것이 제3의 북경말이 등장했다.만주인이 배운 혀짤배기 중국어가 그것이었다.(이하 편의상 "만식 한어"(만주인식 한족말)로 호칭)
 
第三种北京话的形成——内城北京话(mandarin)
제 3의 북경말 등장-내성 북경말(만다린) 

北京城里的一棵小树、厨房里的一件工具,用满语都无法表达!因为满族人的祖先从来没见过这样的植物,从来没见过这样的工具,这就是当时统治中国的满族人所遇到的严酷的语言现实。满语要继续说下去,除了直接使用北京外城汉人的语言的词汇和模仿他们的语音之外再也没有第二种可能!就象日本皇军学说中国话:“你的,八路的,干活?”一样,北京内城的满人开始了他们艰难的模仿汉语的历程.
북경성내 나무 한 그루, 주방용구 하나라도 만주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만주인의 선조는 그런 식물이나 그렇게 생긴 물건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이것이 당시 중국을 통치하던 만주족이 겪은 냉혹한 현실이었다.만주어가 계속 생존하려면 북경 외성의 한족들이 쓰는 단어를 쓰고 발음을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중일전쟁시 일본 제국군이 "너, 팔로군, 일해?"따위의 중국어를 배운 것처럼 북경 내성의 만주인들은 험난한 중국어 모방의 길을 나서게 되었다.
 
但是满语对比汉语有它先天的残疾,首先,入声字一下子就全丢了,这就是汉语同音字增多最根本的历史原因,用满语套学汉语的发音更是不伦不类,可以肯定地说,这是发音最糟糕的汉语。但是,历史就是这么残酷,满人的这种蹩脚汉语比起日本皇军的蹩脚汉语要幸叩枚嗔耍‰S着使用人口的增加,这种让当时的汉人老百姓笑掉牙的蹩脚汉语成了清朝统治阶级的“共同语言”——这就是早期的普通话(暂时使用英语的称谓把这种语言称为mandarin)。
그러나 만주어는 한어와 대비되는 선천적 문제가 있었다.우선 한어에 원래 있던 받침소리(입성음)가 몽땅 사라져야 했다.이것이 현대 중국어에 동음字가 많아지는 원인이 되었다.만주어 발음으로 한어를 배우다 보니 발음이 엉망진창인 한어가 되어버린 것이다.그러나 역사는 잔혹했다.일본제국군의 중국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과 달리 이당시의 혀짤배기 한어는 사용인구가 증가했다.한족들이 듣고 배꼽이 떨어져라 비웃었던 혀짤배기 중국어는 청나라 통치계급의 공용어가 되었고 이것이 바로 초기의 보통화이다.(이하 영어명 만다린으로 통칭한다.)
 
内城北京话的发展——走出北京内城,形成 “官话”
내성북경말의 발전-북경의 내성을 벗어나 "관화"형성

随着北京内城的“mandarin”这种蹩脚汉语的形成,在北京内城形成一个固定的说“mandarin”的人群。这个人群就是当时中国的最高统治团体——八旗贵族。“mandarin”成为地地道道的清朝统治者的官方语言——“满清官话”.
북경내성의 만다린이라는 혀짤배기 한어의 형성은 우선 내성에서 고정적 만다린 사용집단을 형성했다. 이 집단은 당시 중국의 최고 통치집단인 팔기 귀족이다.만다린은 청나라 통치집단의 관방언어인 "滿淸官話"로 자리잡았다.
具体的时间有待考证,在《康熙字典》中的语音跟今天的普通话的语音还是一定的差别的,但是跟其它汉语方言相比已经更接近今天的普通话了。
从“满清官话”的形成史看,“满清官话”受满语的影响主要在语音方面,这是一种不成熟的蹩脚的汉语语音系统,而在词汇和语法方面的影响则十分有限,从语言的本质上将,“满清官话”还是应该归属于汉语的一种方言而不应该归属于满语的一种方言,不过这是最糟糕的一种汉语方言。
구체적 시대는 고증되지 않았지만,"강희자전"에 나온 한자의 음은 현재 보통화의 어음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그러나 요는 다른 한어 방언과 비교할 때 오늘날의 표준어에 가깝다는 것이다.
"만청관화"의 형성사로부터 보아 관화는 만주어로부터 주로 발음상의 영향을 받아 혀짤배기의 미성숙한 발음체계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어휘와 문법상에서는 본질적으로 한어계통의 방언으로 구분지어지며 만주어의 방언에는 속하지 않는다.(발음이 가장 엉망인 한어방언이라고 말할 수 있다.) 
 
内城北京话的发展——落地生根,形成 “国语”
내성북경말의 발전-뿌리를 내려 "국어"가 되다
“满清官话”形成后,随着满清政权在地域上的延伸,操着“满清官话”的八旗贵族也就从北京的皇家内城走向中国的每一个角落,于是各地的第一行政长官的口音又成了当地的标准口音。并在当地的上流社会向平民社会不断地渗透壮大,最终使“满清官话”成为中国的“国语”。
"만청관화"의 형성 이래 청의 만주족 정권이 영토를 확장하면서 관화를 사용하는 팔기 귀족들도 북경의 황궁 내성으로부터 중국대륙 곳곳으로 진출했다.그리하여 각지의 최고 행정관의 발음이 현지의 표준 발음으로 정착되어 현지 상류사회의(문화가) 대중에게 보급되면서 결국 관화는 중국의 국어로 자리매김했다.

 
从地域上来讲,中国的北方是满人活动的主要地区,也是满语化程度最高的地区。而南方的个别地区,象两广、福建等地则由于“山高皇帝远”而受到较少的影响,这也是南方诸语言读唐诗宋词比普通话更押韵更亲切的根本原因,也是清代中国没有著名诗人的根本原因。
지역적으로 중국 북부는 만주족의 주요 활동지역이었으며 만주어화의 정도가 가장 심한 지역이었다.반면 남부 각 지역(예로 광동/광서,복건등)에는 나랏님이 계신 서울에서 너무 먼 관계로 만주어의 영향도 적었다.그래서 현재 남방 각 방언으로 唐詩나 宋詞를 낭송하면 음운이 더 확실하고 느낌이 절절한 거다.청대에 중국에서 유명한 시인이 씨가 마른 것도 만주어로 인한 한어파괴 때문이다.
 
有一点要说明的是,mandarin是从北京内城绕过北京外城直接向全中国渗透而形成满清的“国语”的,所以,北京的外城话并不是真正的“国语”——普通话,虽然“外城北京话”一直受“内城北京话”的影响并不断演变,但是,正如北京的内城贵族和外城平民百姓是两个互不兼容的两个社群一样,“外城北京话”和“内城北京话”是跟阶级差别一致的互不相同的两种语言。所谓的“北京话”一直是两种:“外城话”和“内城话”,而各地方所称谓的“北京话”实际是指“内城话(即mandarin)而不是外城汉人所说的“北京话”。外城汉人所说的“北京话”实际是对中国其它方言没有影响的小语种。
요컨대 만다린은 북경 내성에서 생성되어 외성을 우회해서 중국 전체로 퍼져가서 청조의 국어가 된 것임을 주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북경 외성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가 알고있는 국어 즉 보통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물론 외성 북경말은 다소 내성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내성의 만주족 귀족들과 외성의 한족 평민사이의 현저한 계급차 때문이 섞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소위 북경말이라고 하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성밖의 말"과 "성내 말"이 있었다. 지금 지방에서 알고있는 표준어 즉 보통화(만다린)는 내성에서 쓰이던 만주인 발음의 한어로,이는 외성의 북경말과는 다르다.외성의 한족들이 말하던 북경어는 중국에서 영향력이 거의 없는 소수 언어이지 지금의 표준어와는 무관하다.
 
内城北京话的发展——汉语代表语言地位的确立
내성 북경말의 발전-중국 대표언어로써 지위확립

mandarin经过满清王朝200多年在中国的统治,再经过孙中山政权以一票之优势对“国语”地位的表决,再经过中华人民共和国在宪法上“国家代表语言”条文制订,普通话——汉语代表语言地位已经是坚不可摧。
만다린은 청나라 만주족 왕조의 200년 중국통치 기간동안, 그리고 손문의 중화민국 임시정권이 한 표 차이로 표준어로 인정한 표결에 의해,그리고 다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의 "국가의 대표언어"조례 제정으로 인해 보통화라는 이름으로 이미 흔들 수 없는 중국어의 대표언어 지위를 획득하였다.
 
内城话北京话在北京的消失
내성말이 북경에서 사라지다.

从语言史上讲,普通话不是北京话,而只是北京的内城话,随着满清王朝的解体,北京内城的贵族群体也就在北京城里消失了,因而普通话的真正母体在北京城也已经不复存在了。把普通话硬说成是什么北京话,这在100多年以前可能还有一半正确,但是在今天还这样说大错特错了,因为“北京话”这个概念变了,已经不再是原来的那个“北京话”了。
언어사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보통화는 북경어가 아니라 북경의 내성말이다. 청나라의 해체에 의해 그 언어의 사용집단인 만주인 귀족들이 성에서 나와 흩어져 보통화의 뿌리인 그들은 이재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보통화를 굳이 북경말로 정의하는 것은 100년전이라면 반쯤 정답으로 칠 수 있었다.그러나 오늘날 이 말은 완벽한 오답일 따름이다.북경말이라는 개념이 변했는데 그 때의 북경말이 지금의 북경말이 아닌데 어떻게 그게 말이 되나?
 
移民与语言 이민과 언어

世界上任何语言的产生、发展和生存都离不开一定的社会群体,人群才是语言的决定因素,即使是象世界语、女书这样的人工语言也不能逃避社会群体的决定性作用。离开了人群,语言将无从产生,也无从生存。研究和思考一种语言也必须从移民的角度出发,这样才能找到语言的根源,才能真正认识一种语言的本质。
세계의 어떤 언어건 생성,발전,생존에는 일정한 사회집단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에스페란토나 뉘수(女書)등의 인공언어도 그 언어의 사용집단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가? 집단을 떠난 언어는 생겨날 수도 생존할 수도 없다. 한 언어를 연구하려면 먼저 그 사용인구의 이주사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직역하면 뜬금없이 "어떤 언어를 연구하려면 이민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이 언어의 뿌리를 찾고 언어의 본질을 파악하는 길이다.
 
普通话也不能逃避它自身的生成发展史,跟其它所有语言一样,普通话生成发展史也是跟说普通话群体的移民史一体的。作为一个语言学者可以对某种语言抽象出出千千万万个特性来,可以对这些特性做一层又一层、一套又一套的理论演释,可以找出两种语言之间很多各种各样的“关系”,甚至象中文和英文这样的两种几乎互不相关的语言也可以找出“同音同义词”来。然而不能否定语言的社会根源。历史就是历史,历史没有什么羞耻,只有存在的事实.
보통화역시 마찬가지로 그 언어의 생성과 발전에 있어 언어 사용집단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보통화를 사용한 집단의 이민사를 보자.언어학자는 어떤 언어의 추상적 특징을 수만가지 뽑아낼 수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점층적으로 이론을 발전시킨다. 심지어 영어와 중국어처럼 완전히 다른 두 언어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고 "동음동의어"를 찾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언어의 사회적 근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역사는 사실로서 존재하는 역사일 뿐 수치스러울 필요가 없다.
人工语言?인공언어?

普通话不是现在的北京话,也不是什么人工语言。因为100年前的中国完全不具备创造一种象普通话这样的“人工语言”的学术能力,实践中也没有任何个人或任何语言学家群体是真正的普通话之父,在中国的近代语言学者们要努力创造中国的国语——普通话之前,满清的统治者们如:道光、慈禧等就已经能说一口标准流利的普通话,真正的普通话之父就是他们——满清北京内城的皇亲贵族。
보통화는 현재의 북경말이 아니고 인공언어도 아니다.100년전의 중국은 보통화같은 언어를 인공으로 개발할 만한 학술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실제로도 어떤 개인이나 학술가 집단을 꼬집어 보통화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다. 중국 근대의 언어학자들이 중국의 국어인 보통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훨씬 전부터 청의 통치자들 예를 들면 도광제나 서태후 등이 이미 유창한 보통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진정한 보통화의 아버지는 북경 내성에 살던 황가 귀족들이다.
 
普通话和北京话 보통화와 북경말

明白了普通话的历史,普通话的概念也就清晰了,其它的“满语”、“官话”、“国语”、“普通话”、“北京话”和“mandarin”、“汉语”、“方言”这些概念也就不会搞混淆了。从历史上看,普通话从来就不是现在的北京话,普通话有它自己的历史。而现在的北京话虽然跟普通话比邻并一直受普通话的影响和向普通话不断靠近,但它从来就没有真正跟普通话成为一体过,说这两种话的人也从来都是生活在两个鲜明不同的社会,所以它们是有区别的两种汉语方言.
보통화의 역사를 이해하면 보통화의 개념도 바로 보인다.만주어 관화 국어 보통화 북경말 만다린 한어 방언 등의 개념이 이제 서로 혼동되지 않을 것이다.역사적으로 보통화는 결코 현재의 북경말과 같지 않았다.보통화는 독립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반면 현재의 북경말은 여타 보통화 사용지역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이전부터 절대 보통화와 한 몸이 된 적은 없다.보통화 사용 계층과 북경말 사용 계층은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사회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화와 북경말은 서로 다른 한어의 두 갈래 방언이라고 본다.
 
结论 결론
普通话是满族人学讲的汉语而不是受满语影响的汉语
보통화는 만주인이 배운 한어이지 만주어의 영향을 받은 한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