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3성 조선족

침체된 우리글 서예 부활의 그날 언제 오나

아람누리 2013. 9. 28. 11:49

 

 

 

 

 

침체된 우리글 서예 부활의 그날 언제 오나
2013년09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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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윤동주연구회, 연변 문자예술협회, 한국 무등한글서예연구회에서 주최한 “별의 시인 윤동주 시와 서예의 만남 중한일서예전”이 중국 길림성 룡정 명동학교에서 지난 8 19일 오전에 펼쳐졌다. 이날의 행사에 앞서 기자는 연변문자예술협회 서영근회장, 한국 무등한글서예연구회 문재평회장 그리고 연변문자예술협회 김정송고문을 찾아 중한서예의 현실을 진맥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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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연변문자예술협회는 1996년에 설립된 연길시 조선글서예가협회를 시작으로 2003년부터는 동방연묵화라는 명칭으로 회원양성과 국제교류 등 활동을 해왔고 2008년에는 사단법인 연변문자예술협회를 창설하고 더욱 왕성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2012년 3월에는 한국에 한중동포서예협회를 설립하고 재한동포,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회원을 양성하는 한편 각종 서예활동을 조직하였다. 한국 무등한글서예연구회와 손잡고 1998년에 개최한 제1회 중한한글서예교류전을 시작으로 15회 중한교류전을 개최하는 동안 계속 같은 형식으로 진행하다가 2010년부터는 “먹빛으로 밝히는 새아침전”, “묵향으로 맺어진 형제의 정전”, “한중일국제한민족 한글서예한마당” 등 새로운 타이틀로 전시회의 주제를 정하고 구태의연한 전시가 아닌 신선한 전시회가 되기에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연변이나 한국의 서예가 침체기에 빠져있는 상태, 이에 대해 서영근회장, 문재평회장, 김정송고문은 아래와 같이 견해를 밝혔다.


01.jpg서영근 회장:
우리글, 우리 문화를 보급하고 계승하기 위해 연변문자예술협회는 지난 15년간 큰 역할을 했다. 이번에도 윤동주시의 서예표현으로 중국조선족문학의 계승과 발전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데서 자호감을 느낀다.
초창기에는 연변의 서체(간도체)를 위주로 전시회에 출품했다. 한자의 영향을 받아서 한국과 색다른 한글서체였다. 사람들은 보기 드문 서체를 좋아하는데 내가 보기에 연변체가 별로 촌스럽고 전통이 아닌것 같아 한국의 전통서예를 공부하려고 1997년에 한국류학을 떠났다. 당시 나는 연길시조선글서예가협회 회장이였다. 현재 연변의 서체도 끊임없이 새로운것을 시도해 많이 다양해졌다. 하지만 경제문제에 발목을 잡혀 서예가 침체기에 들어서면서 회원들도 보통 1년, 많아서 10년가량 하고는 포기하는 바람에 익숙한 회원이 적고 그냥 새 얼굴들이 바뀌여 연변문자예술협회를 이끌어나가는데 곤난한 점이 적지 않다. 얼마전에도 연변대학 사범학원에서 서예전공을 개설했지만 학생모집결과 지원자가 단 8명뿐이여서 결국 페과되고말았다.
비록 상황이 이처럼 여의치 못하지만 지금의 침체기가 너무 오래 갈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달이 이지러졌다가 다시 둥글어지는것처럼 언젠가는 우리글서예도 부활할 날이 올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서 우리글서예가 찬란한 문화로 계승, 발전되도록 하겠다.
02.jpg문재평 회장:
중국서예는 자유분방하고 한국서예는 법을 위주로 한다. 특히 한글서예는 개성이 없으면 기존의 궁체 등을 베끼는것일뿐이기에 자기만의 색갈을 연구하지 않을수 없다. 서예는 30년을 수련해야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즉 첫 10년은 고전을 통해 충실히 공부하고 다음의 10년은 고전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며 마지막 10년은 자기만의 글씨를 창출하는 등으로 30년이 돼야 나름대로 자기만의 색갈을 갖출수 있다는것이다.
한국서예도 예전보다 많이 침체되였다. 원인은 우선 지금의 한국인들이 건강우선으로 운동, 등산, 헬스 등에 신경을 많이 쓰고있고 또 학교에서도 입시위주로 교육하기에 서예가 외면받지 않을수 없다. 또 정부기관, 백화점, 도서관 등에서 홍보를 위해 문화센터를 설립하고 학비를 싸게 혹은 무료로 가르치는 바람에 정규적인 학원에 가서 서예를 배우려는 학생이 대폭 줄어들었다. 사실 한국서예도 처음에는 흥성했으나 문화센터의 팽창, 명문학교 입시위주의 영향 그리고 학원끼리의 치렬한 경쟁에 밀려 원래 전 한국적으로 500만명이나 되던 서예인구가 현재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금방 연변대학 사범학원에서 서예전공을 개설했다가 지원자가 단 8명뿐이여서 페과했다고 하는데 한국도 학원생이 10명이상이여야 개강할수 있다. 이런 렬악한 상황에서 한줄기 빛이 보이는건 현재 한국의 초등학교, 중학교들에서 서예과를 설치해 보급과정에 있고 앞으로 대학에도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있기때문이다. 또한 현재 간판, 족자 등으로 서예가 점차 생활속으로 들어가고있기에 조만간에 서예가 부활할 날이 오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03.jpg 김정송 고문:
내가 연변대학 사범학원에 서예선택교육과를 개설한후 한동안은 흥성했으나 2000년도에 내가 퇴직할 때 침체기를 맞았다.
우리글서예는 우리 민족문화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경제문제, 해당부문의 지지가 부족한 등 원인으로 침체기를 맞아 조선족들이 물러나고 한족들이 대부분 미술사를 차지하다보니 조선글을 몰라서 간판글씨도 많이 틀린다. 사실 서예, 미술, 사진작품은 생활속에 깊이 침투돼야 할뿐만아니라 시장화가 돼야 한다. 지금 사람들은 남의 작품을 가지기만 하고 그 가치를 모른다.
최근에 와서 해당부문들이 이에 대해 중시를 돌리는것 같다. 교육부의 중시로 중소학교들이 서예학과를 개설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있는데 지금이 새로운 시작점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우리글서예활동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
우리글 서예를 위한 대안마련 시급
서영근회장, 문재평회장, 김정송고문의 견해를 듣고나서 기자는 침체기 우리글서예의 심각성을 깨달은 한편 한줄기 희망도 보았다. 기자가 자료에서 찾아본데 의하면 서예란 고대 중국에서 발생한 예술형식의 하나로서 조선반도 및 일본에 전래되 한자뿐만아니라 해당 나라의 글씨체를 예술적으로 종이에 표현하는 기술적측면을 넘어서 정신수양의 수단으로 인정받고있다. 이런 측면에서 서도(書道)라고도 한다.
한자를 서예로 배운다면 거부감이 없이 자연스럽게 터득할수 있고 한글을 서예로 배우면 글자에 대한 구성원리를 리해할수 있으며 언어를 배우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또 인내심을 키울수 있고 집중력도 높일수 있다. 한자나 한글을 쓸 때에는 인생에 도움이 될 사자성어를 쓰면서 배우기에 여기에서 얻는 교훈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수 있고 정서적으로도 학습효과가 나타난다. 이처럼 우리의 삶과 긴밀히 련계시킬수 있고 아이들의 공부에도 더없이 훌륭한 도우미가 될수 있는 서예가 자취를 감춘대서야 어디 될말인가. 정말 우리글서예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다면 우리는 인생교훈을 습득할수 있는 지혜 하나를 잃게 되고 우리의 아이들은 바르게 자라나는데 필수적인 길잡이 하나를 잃게 될것이다. 서영근회장, 문재평회장 등이 우리글서예를 지키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모지름을 쓰는 모습에서 언젠가는 우리글서예가 다시 우리의 생활속으로 돌아올것이라는 확신이 들기도 하지만 몇줌의 흙으로 물곬을 돌리기 힘든것처럼 몇몇 사람의 힘만으로는 력부족인 점을 감안한다면 문화예술계의 모든 지성인들이 힘을 합쳐서 하루빨리 우리글서예를 지켜내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가.
우리글서예가 다시금 활기를 띠고 우리의 삶에 친근하게 다가설 그날을 기대해본다.
해란강닷콤 전일봉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