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和信

갑곶순교성지

아람누리 2009. 10. 10. 21:11

 

 

 갑곶순교성지 

 

 

 

 

 

순교자의 모후- 전교수녀회 /  한국가톨릭대학교 부설 교회사연구소

 

 

강화도와  갑곶순교성지

 강화도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 초기부터 천주교와 연관맺고 있다.  조선에 최초의 선교사로 입국한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철종의 할머니 송씨와  며느리 신씨에게

각각  마리아로 세례를  준 것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왕족이었던 이들이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연유로 그동안 자식 상계군의 역모죄로

강화도에 귀향하여 살고 있던 은언군(철종의 조부)도 강화부(관청리 형방-천주교 강화성당 부근)에서 처형되었다.

 강화도가 천주교와 또 다른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839년 기해교난을 겪으면서

였다. 박해가 시작되면서  그동안 천주교 신앙이 유입될 때 이용되던 육로 통행이

여의치 않게 되자,적당한 해로를 찾게 되는데, 이로 인해 한강과 맞닿아 있는 강화도 연안 뱃길이 중요하게 대두되었다. 특히 김대건 신부는 선교사를 입국시키기 위한 해로를 개척하려고 서울 마포를 떠나 이 곳 강화 갑곶 앞바다까지 왔으며, 그 후

연평도, 백령도를 거쳐 순위도 등산진에서 1846년에 체포된다. 그 뒤에도 이 강화

갑곶 해안은 선교사들이 해로로 입경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통로가 되었다.

갑곶 순교성지 입구

소재지 :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1044-2

☎ : 032-933-1525

http://www.gabgot.net

gabgot@cainchon.or.kr

 

정문에 들어서자 마자 있는 성모상

 

 성모상 앞을 지나자 보이는 성당과 주변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 때는  강화도가 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대원군은

천주교 금지령을 내려 몇 개월 사이에 프랑스 선교사 9명과 천주교인 수 천명을

학살하는 사건을 일으키는데, 이로 인해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하게 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였는데, 이곳 강화도에서도 1868년에 진무영(현재 강화성당 부근)에서 최인서, 장치선, 박서방(박순집의 형), 조서방 등이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1871년에 이곳 갑곶에서 직접적인 순교사건이 일어났다. 강화도 해역에

미국 함대 4척이 나타나, 1866년 미국 상선  제네럴 셔만호가 불탄 사건의 책임을 물어 통상을 요구했으나, 대원군이 이를  거절하게 되면서 군사적 충돌이 빚어진 것이다.(신미양요). 이 사건으로 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더욱 심하게

천주교를 박해하였다. 그 결과 기록상 제물진두(현재 화수동 성당 주변)에서 여섯 분이, 이곳 갑곶진두에서는 박상손(朴常孫), 우윤집(禹允集), 최순복(崔順福)세분이 순교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갑곶 성지 성당

 

 

 

 순교자  3위 비 쪽에서 본 성당 전체 모습

 

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멀리서 본 성당

 

 

 성당 내부 모습

 

 

   

박순집의 묘

박순집(朴順集, 베드로,1830~1911)은 1830년 10월 9일 서울 남문밖, 전생서(典牲署, 현 용산구 후암동)에서 순교자 박(朴) 바오로와  김(金)아가다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신앙을 이어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1836년 기해(己亥) 박해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신 주교와 신부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안장한 박 바오로는 아들인 박 베드로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준다.그리고 1866년 병인(丙寅)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아버지 박 바오로의 뜻을 이어 가기로 결심한다.그래서 박순지(朴順之,요한)

등 몇몇 신자들과 함께 제 4대 조선교구장이었던 베르뇌(Berneux 張)외 많은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이장하였다. 그리고 3월 7일과 9일에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남종삼(南鍾三,요한)과 최형(崔炯,베드로)시신도 신자들과 함께 찾아내어 안전한 곳에 안장하는 등, 순교자들의 시신들을 수습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이는 죽음을 각오한 순교자적 고귀한 희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서 그는 우리나라 순교역사의 증거자가 된다.  그로 인해 밝혀진 순교자의 행적은 150명이 넘어, 그 순교자들의 유해를 우리가 직접 보고 조배를 드릴 수 있게하는 결정적인 열할을 제공하였다.

그 후 인천 교구의 복음회를 위해 애 쓰다가, 1911년 6월 27일, 82세의 나이로 "예수  마리아 요셉"을 부르며 선종하였다.

 

우윤집(禹允集), 최순복(崔順福),  박상손(朴常孫)  3위비

 

갑곶에서 순교하신 분은 박상손(朴常孫), 우윤집(禹允集), 최순복(崔順福) 세분이다. 사연인 즉, 미국 군함이 물러간 이후, 같은 해 5월 29일(양력 7월 16일), 고종은 더욱 철저하게 천주교인을 잡아 처벌하라는 내용의 교서를 좌우 포도대장에게 내리게 되었고, 이 때에 미국 군함에 몰래 찾아간 일이 있었다는 죄로 이 세분이 효수

(梟首)된 것이다.

문헌상의 갑곶진두의 위치를 연구한 인천교구 성지개발위원회는 그 자리를 매입하여 지금의 갑곶순교성지를 조성하였고,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집중적으로 개발하였으며, 사제를 파견하여 순례자들의 신심을 돕고 있다.

 

 

""세분 순교자께서 남기셨을 법한 이야기..........................................................

""뭔지 모르는 힘에 이끌려 그 배로 갔습니다. 소문대로 강화  앞 바다에 큰 배가 들어와  있었지요. 일전에 있었던 사건(제네럴 셔먼호)때문에 항의하러 온 미국 배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중 누군가가 위험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꺼내고야 말았습니다. 그 배 위로 올라가 보자는 것이엇습니다.가면 말이 통하기나 할까 ? 우리를 되레 적으로 알고 총을 쏘지는 않을까 ? 천주학을 자유롭게 믿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우리의 요청이 먹히기나 할까 ? .....    예전그 잘 나갔던 윗동네

황사영조차도 백서(帛書) 일로 죽음을 면치 못했거늘, 우리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 쏟아지는 걱정과 의문들은, 우리가 그 배로 가야 할 이유보다, 그 배로 가면 안 될 이유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 일로 우리는 결국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목이 잘려 죽임당했습니다. 게다가 천주학을 믿지 말라는 경고용으로, 인적이 붐볐던 이곳 진해 나루터 주변에,우리의 잘린 목이 긴 장대에 꽂혔습니다.

우리를 보러 오신 여러분, 우리는 두렵습니다.

어차피 죽은 마당에 뭐가 두렵겠습니까만, 그들의 의도대로 여러분들이 우리를 보고 혹시라도 자기가 누리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을 버리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우리는 또한 여러분들에게 영웅이 될까 두렵습니다.천주보다 더 높아질까 두렵습니다.  만약 우리들을 칭송하시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우리가 아닌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주십시오.

마지막 당부가 있다면, 우리가 있는 이 곳에 여러분들의 망설임과, 고집,작대, 그리고 섣부른 판단을 묻고 가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랬던 것 처럼,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이나 판단을 훨씬 뛰어 넘어 가슴속에 피어 오르기 때문에, 이겨낼

도리가 없습니다.

그 망설임은,지니고 가봤자 별로 도움이 못 될 것입니다.갑곶 성지 아무데나 묻고 가셨다가, 나중에 또 오실 때마다 열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

 

 

순교자 3위비에서" 십자가의 길"로 가는 쪽에 있는 성모자상

 

 

"십자가의 길"  14처를 돌며,  한곳, 한곳 마다에서

진지하게 기도를 하는 신자들의 모습

 

 

" 십자가의 길 "--- 14처

 

 

우물터

예전에 이 동네는 강화도 외곽을 둘러 쌓은 강화외성의 6개 문루 중  하나인 "진해루"가 있었던 곳.   강화와 육지를 오가는 배가 다니던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왕래했다는 것을 반증하기라도 하듯, 아직도 우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순교자 세분이 이 곳에서  효수(梟首) 당하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효수형은 목을 잘라 긴 장대에 꽂아 많은 사람들에게 경계토록 하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聖 김대건 (金大建, 안드레아, 1822~1846)

 

 

聖 남종삼(南鐘三, 요한, 1816~1868)

 

 

 야외 행사장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상

 

 야외 행사장--   멀리 육지와  오른 쪽에 강화대교가 보인다.

 

 

야외행사장 --   성당 본당 방향

 

 

 본당쪽에서 내려다 본 야외행사장과 바다. 오른 쪽은 강화대교

 

 야외행사장과 십자가의 길에서 본당으로 올라 가는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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