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중국

중국문화, 반격할 때가 됐다!

아람누리 2013. 2. 25. 22:32

 

 

중국문화, 반격할 때가 됐다!
                                         -베이징 대학 고등인문연구원 토르스텐 페트버그 연구원
2013년 02월 22일 (금) 14:03:11  

 ■ 아시아타임스

 

용의 해였던 1년 동안, 중국은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 최대의 무역국가가 됐다.

새로운 뱀의 해에 중국은 기회를 잡고 중문 문화 지식을 널리 전파해야 할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중국의 주요 도전은 서방국가와의 자유, 경제, 물질 자원 경쟁뿐

이 아니다. 진정한 도전은 다시 한번 중문으로 ‘세계 역사’를 쓰는 것이며, 이를

위한 유일한 길은 중문 어휘를 보급하는 것이다.
공자는 일찍이 이런 말을 했었다. “우선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언어가 바르게

잡히질 않는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서방의 성서와 철학의 번역본들이

강력한 공세를 펼쳐왔기 때문에 중국 사상 이론의 정확한 용어는 거의 살아남지

했다. 서방이 중국 개념을 표현하고 있는 어휘는 이러한 개념의 실제적인 본질을

왜곡하고 있는 것들이다.
현재까지 중국의 언어는 서방 국가들이 도입한 로마자 표기법으로 표기되어 왔다.

 바로 웨이드식과 병음 표기법이 이렇게 표기된 것이다. 비록 중국의 음양이나

쿵푸같은 중국의 일부 개념들은 이미 서방에서 받아들여졌지만, 해외에서 사용

되는 중국어 어휘를 정책적인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보급해오지 못했고, 분명

과학과 인문 영역에서도 어휘가 제대로 보급되지 못했다.
중국의 국가 영문 출판물에서 또한 자신 있게 중문 어휘를 사용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최근 중국은 세계 중요 문화 중심 도시에 ‘공자학원’이라는 중국어

학습반을 개설하고 보급해왔다. 그러나 이들 공자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중국어’ 뿐이다. 중문 어휘의 보급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외국에서는

심지어 이들을 중국어 교육기관으로 부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나를 종종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중국의 많은 동종업계 사람들이 나에게 중문

어휘를 독창적으로 외국어로 번역해주는 것이다.“이게 뭐죠? 기린(麒麟)이 무엇

인가요?”“이건 ‘unicorn’이라고 해석할 수 있죠.”,“저건 뭐죠? 용(龙)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죠?”“ ‘dragon(용)’이라고 부르면 되요!”
물론 당신이 꾸며낸 것이 어떤 손해를 끼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나라뿐 아니라, 사회학 영역에서 본다면 이는 엄청난 손실이다. 예를 들어

문명(文明)은 어떻게 표현할까? 영어로는 civilization이라고 해석한다.

대학(大学)은 영어로 university이다.
성인(圣人)이라는 말은 sage(현자), philosopher(철학자)라는 표현으로 적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단어들은 서로 균형이 맞지 않는다.
중국은 그들이 땅과 해양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같이 ‘문화재산권’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상의 창시자 혹은 명칭의 소유자가 되어야 더 큰 이익을

갖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에게 잘못된 것을 전달해서는 안 된다. 서양에서는 서방

선진국의 전문용어로 설명된 말로 중국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며, 중국의 전문

용어로 중국을 설명하지는 않고 있다.
이슬람교와 힌두교는 영어라는 국제 언어를 사용하어 널리 보급되고 강대해졌다.

이처럼 중국어도 앞으로 세계적으로 멀리 나아가야 한다. 나 같은 서양인은 미국

인과 유럽인에게 중국어를 가르칠 수 없지만, 중국인은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가르침이 서방의 대중들에게 중국에 대한 개념을 이해시키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어 교육을 가장 잘 받았다고 하는 서양 사람들도 인(仁),

대동(大同: 전통 사상가들이 제시한 사람마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이상 사회),

천하(天下), 천인합일(天人合一: 하늘과 사람은 하나이다) 등의 이치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세계 여러 민족과 같이 서방인들 또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그들을  보내어 중국어 분류 체계를 찾아보고 조사해보라고 시킨다면, 그들은

이러한 개념에 대해 잘 숙지하게 될 것이다. 이를 잘 알게 된다면, 다시는

  ‘군자(君子)’를 ‘gentleman’ 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며, ‘junzi’ 라는 고유어로

부르게 될 것이다.

                                                                           이사랑기자 drace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