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중국 ‘인천차이나타운’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 | ||||||||||||
국립민속박물관, ‘인천 차이나타운 청관(淸館)’ 도시민속조사보고서 | ||||||||||||
| ||||||||||||
20주년을 맞아 ‘인천 차이나타운의 화교문화’를 조사·정리한 보고서 ‘인천 차이나 타운 청관(淸館)’, ‘왕조용·김미라 가족 의 살림살이’ 2권을 발간했다. 박물관이 서울 아현동(2007년)을 시작으로 진행하고 있는 도시 민속조사사업의 결과물로, 서울 정릉3동(2008년), 울산 달동(2009년), 전남목포(2010)에 이어 발간한 것이다. 차이나타운의 민속지‘인천 차이나타운 청관(淸館)’은 1883년 처음 인천에 들어온 청나라 상인을 시작으로 중국인으로서 한국사회에 적응하며 살아온 인천 화교들 의 다양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수록했다.
■ 민족적 차별 속에 성장한 인천 차이나타운 산둥성 출신이었으며 채소농사,이발사, 재단사, 요리사 등으로 생업을 이어갔다. 살아 왔다. 또한 한국정부의 화교정책에 따라 부침을 겪으며 살아왔다. 산둥성이 고향이고 본적이나 한국전쟁이후 한중관계 악화로 본적지를 버리고 타이완의 국적을 취득해야만 했다. 사실상 포기하게 되었으며, 1997년까지 이어진 부동산규제 정책으로 일정수준 이상의 점포와 농토를 소유할 수 없었다. 를 본인명의로 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한국인의 명의를 빌리거나 한국인 부인 의 명의로 재산등록했으나 사기로 재산을 잃은 경우도 있다. 1968년에는 1961년 의 금지에서 완화되어 주거용 200평, 상업용 50평 이내의 토지의 취득허락을 받았다. 이나타운 일대의 면적은 30만 평방미터이며 화교인구는 3백 가구 약 1천명이 살고 있다. 이후부터 한중수교 이전까지 유입된 화교의 후손들이다.
연상케 한다. 면 많은 화교들이 이곳에서 제례를 올린다. 묘우명 의선당은 ‘의를 지키고 착하게 살겠다’는 뜻을 가졌다. 의선당에 모셔진 신과 선은 모두 다섯 분이다. 이 신선들 은 모두 중국과 타이완에서 추앙받는 신선들이다. 묘우 정진 내부 왼쪽부터 호삼태야, 사해용왕, 관음보살, 관우, 마조신이 있다. 또한 이곳에는 인천 부평공동묘지와 육미리 화교공원 묘지도 있다. 관광명소이다. 짜장면은 중국음식의 대표음식으로 그 시작은 인천이라는 게 정설 이다. 이러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청요리점이 있기 때문이다. ‘짜장면박물관’으로 바뀌었고 중화루는 건물은 헐려 터만 남아 있고 그 이름만 물려받아 신포동에서 새로 운영되고 있다.
■ ‘왕조용 · 김미라 가족의 살림살이’ 를 통해 본 화교생활 교가정의 살림살이를 조사한 ‘왕조용·김미라 가족의 살림살이’는 화교 아빠와 한국인 엄마, 화교학교에 다니는 자녀로 구성된 가정을 선정하여 그 가정에서 소장하고 있는 모든 살림살이를 기록하고, 그 물건들을 통하여 현재 화교가정의 생활모습을 기록했다.
|
'떠오르는 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숫자로 보는 중국 경제 (0) | 2012.09.06 |
---|---|
'2012 베이징국제도서전’ 한·중 수교 20주년 맞아 주빈국 참가 (0) | 2012.09.06 |
붓과 먹으로 옛 베이징을 재현 (0) | 2012.09.06 |
베이징에 선보인 도시락 자판기 (0) | 2012.09.06 |
‘중한 수교 20주년 기념 보도사진전’ 주목 받아 (0) | 2012.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