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 난 청계천

청계천 10 ( 청계 7 가 ~ 8가 )

아람누리 2005. 11. 18. 02:14

 

 

 

황학교  하류에서 본  비우당교. 庇雨堂은 비를 근근히 가리는 집이라는 뜻으로,  조선 초,  3 대  임금을 받든 정승, 유관이  이 곳에 초가를 짓고  살았는데, 어찌나 청빈한지  장마철마다 집에 비가  샜고,  그는  비가 새면 과거 급제 때 하사 받은 일산 ( 日傘 )을  펴들고  아내에게 " 일산 없는 집은 장마철을 어떻게  나나 "라고  물었다고 한다.

 

 

 

 

청계  빨래터.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  있다.

 

 

 

 

 

 

 

과거  청계천은  아낙네의 빨래터이자, 아이들이  멱을 감는 놀이터였다.

 

 

 

다산교 下流의 징검다리에서 본  영도교.

영도교는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귀양을  떠날 때,

그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노산군과  이별을  하며  슬피  운 곳이  바로  영도교 다리라고  한다.

 

 

 

 

 

영도교 아래,  징검다리.

고종 때  대원군이  영도교를  헐고  그  석재를  경복궁  중수에  사용하는 등  ,수난을 

많이  겪은  다리 이다.

 

 

앞에  보이는  다리는  황학교,  아래 돌은  징검다리가 아니고  여울이다.

 

 

 

  위  사진의  여울을  찍은 것이다.   이 것이  징검다리가  아니라는  것은

  돌과  돌  사이를  보통 걸음으로는    넘어 갈  수  없음으로도  알 수 있다.

  건너 편 쪽에  여울이라고  쓴  표지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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