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날리기

바람 부는 곳에 그가 있다.

아람누리 2010. 1. 13. 10:09

 

 

 

 

 

바람 부는 곳에 그가 있다

(인터뷰 … 연 제작자 강범구)

 

 

 

벌써 작년 여름이다. 여의도 한강공원 개막식 때 강범구 선생을 처음 보았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독특하고 수려한 연들을 쳐다보느라 고개를 하늘로 향한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연줄을 잡고 있던 한 노인의 모양새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옛 그림에서 막 튀어나온 듯 하얗고 긴 눈썹을 휘날리며 거대한 새 모양의 연을 날리고 있던 그의 주변에는 이윽고 지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들었다. 그는 연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었다. 당시 김정상 시민기자도 그 무리 중 한 명이었다.

 

 

처음 만든 연이 잘 날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86년도에 현재 한국민속연보존회 노유상 회장을 만났죠. 당시 전통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적어 안타까운 마음에 연을 알리기 위해서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연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정년 이후에는 아예 연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죠."

86년도에 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강범구 선생은 한국의 전통연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여러 국제대회에 참가해왔다. 그러면서 전통연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연은 그 자체로 뛰어나기는 하지만, 너무나 일률적이었다. 줄연이라고 불리는 연으로 하늘을 가득 메우는 것 외에는 특별히 관심을 끌 만한 것이 없었다. 그는 국제대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전통연과는 다른, 창작연의 매력에 더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모어 뷰티불, 모어 빅, 모어 크리에이티브! 이것이 세계 연의 흐름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좀 더 창의적인 것을 원하고 있었죠."

"처음부터 창작연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고, 초기에는 스포츠연이라고 불리는, 움직임이 빠르고 조작이 가능한 연을 많이 만들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좀 더 크고 아름다운 연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국내에는 연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되어 있지도 않고, 그나마 관련 서적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세계대회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관련 서적을 구입하고, 돌아와서는 그 책을 번역하고 직접 만들어도 보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처음 만든 연이 잘 날았다면, 아마도 지금처럼 연에 매달리지 않았을 거예요." 그는 정말 끊임없이 실패 했고, 그래도 다시 만들었다. 그리고 매일 같이 바람 부는 공원을 찾았다.

"방법을 알고 나니 재료가 문제였습니다. 보통 병풍연의 경우에는 높이가 1m, 세로가 2m가 되는데, 그런 연의 뼈대는 가볍고 쉽게 부러지면 안 되죠." 특수연을 만들자면 뼈대가 되는 살은 탄력성이 좋고 부러지지 않는 강도를 가지면서도 속이 비어서 가벼운 것이 좋은데, 국내에는 비슷한 재료는 낚싯대밖에 없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공장에서 자투리를 얻어다가 낚싯대를 이어 붙여가면서 연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천은 보통 패러글라이딩에 쓰이는 재료를 쓰는데, 특수코팅 된 천이라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게다가 필요한 만큼 구입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 가지 색상만을 구하기 위해서도 수백에서 수천만 원의 돈이 든다고.

 

 

 

 

비밀은 각과 균형에 있다

"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입니다. 그리고 균형이죠." 연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연을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잘 나는 연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을. 각이 일정하지 않아서 바람을 충분히 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단 연이 하늘 위로 오르긴 했지만 우왕좌왕하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연 자체의 균형이 제대로 맞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이 하늘 위에서 안정적으로 날기 위해서는 각과 균형이라는 조건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는 인생에서도 비슷한 것 같단다. "안정적으로 나는 연을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부러워합니다. 완전하다, 멋지다고 말을 하죠. 그럴 때면 그 전에 연을 만들면서 들었던 고생은 씻은 듯이 사라집니다."

"외적인 요인으로 치자면 바람이 가장 중요하죠." 연이 잘 날기 위해서는 또한 바람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주변의 지형지물이 많으면 바람의 흐름이 일정하지 않아서 연을 띄우기가 쉽지 않다. 30m이상만 오르면 안정적이 되는 건 그곳에서는 바람이 일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연을 날리는 사람들은 바람이 많이 부는 공원이나, 공터를 찾는 것이 적당하단다. "서울에서는 풍납동이 추천할 만합니다. 풍납동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바람이 들어오는 동네입니다." 풍납동은 예전에 잠실에 살 때 그가 자주 찾던 곳이기도 하다고.

 

거대한 봉황연의 탄생 스토리와 그 연과 함께 사라질 뻔했던 사건

 

 

"96년도 전유럽연날리기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죠. 거기에서 처음으로 봉황연을 날렸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저 놀라워했다. 높이가 11m, 전체 길이가 16m에 달하는 거대한 연이 하늘을 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모습이 정말 거대한 새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신화 및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봉황이라는 새는 그의 손을 거쳐서 유럽 하늘에 살아난 것 같았던 것이다.

"크기가 커지고, 그 색이 다양해지면 그만큼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봉황연의 경우에는 설계를 제외하고 작업만도 50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죠." 그는 특수연 제작을 위해 현재의 집 거실을 공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인데, 그의 집 거실 바닥은 하나의 거대한 각도기였다. 한 곳에는 종류가 다른 재봉틀이 있었고, 다른 한 구석에는 외국 친구들에게 받은 각종 대들이 화분 같은 통에 가득 꽂혀 있었다. 그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봉황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서 보냈을 숱한 시간들이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지금 있는 건 봉황연 4호입니다. 3호는 호주에서 날아가 버렸죠(웃음)." 각종 국제대회마다 갖은 사건사고가 일어나지만, 그 해 호주에서 있었던 일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날은 유난히도 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그래도 5mm되는 특수연줄이라 크게 무리가 없을 줄 알고 조금 힘겹게 연을 올렸는데, 갑자기 돌풍이 불어서 연줄이 끊어져 버렸다.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일본 친구가 "왜 연을 쫓아가지 않느냐?"라고 다급하게 물었다고.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떠나간 연은 찾는 게 아니야."(웃음) 일본 친구는 무척이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연이 커서 한번은 연과 함께 날아가 버릴 뻔한 적도 있죠." 그가 만드는 거대한 연은 바람을 받으면 마치 패러글라이더처럼 사람을 번쩍번쩍 든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큰 연은 날리기 전에 허리띠를 하고, 거기에 다시 연의 끈고리를 걸어야 한다. 한번은 바다에서 연을 날릴 때였는데, 엄청난 바람에 몸이 날아갈 뻔한 적이 있다. 급기야 사람들이 줄줄이 매달렸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또 한 번은 북한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 적도 있죠. 그때는 연이 세계는 물론이고, 마음의 벽까지 허문다는 것을 알게 됐죠." 당시 그는 공항에서 난처한 상황에 빠져 있었는데, 그가 먹을 것을 사주고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가만히 듣자 하니 이북사투리가 들렸고, 아니나 다를까 북한 사람이었다. 90년대였만 하더라도 남북한 간에는 반감이 있어 말도 걸지 않던 때였는데, 연이라는 존재가 그 벽을 허문 것이었다.

 

 

 

몸은 허락하지 않지만, 머릿속에는 스무 개가 넘는 색다른 연들이 날아다닌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만들어 보지 못한 연이 20개가 넘게 남아 있다. 요즘에는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자주 연을 날리러 나가지도 못하고, 작업에도 오랫동안 매달리지 못하지만, 머릿속에는 수 십 가지 색다른 연들이 날아다니고 있단다. 지금에 와서 가장 아쉬운 것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서 쌓아온 기술을 누구에게도 알려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제자를 두고 싶어도, 하다못해 용돈이라도 주면서 가르쳐 줘야 하는데 그럴 만큼의 형편은 아닙니다." 그는 건강이 나빠지면서 20년간 만들어오고 쌓아온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연은 자유이고, 창작입니다." 그의 인생에 있어 연은 한마디로 무엇인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인터뷰는 끝이 났다. 하늘 높이 떠 있는 연을 보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멀리 보이지 않는 세계 또는 어린 시절과의 소중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바람이 불면 푸른 하늘 위에 연을 올리고 서울 어디에선가 백미(白眉)를 날리고 있을 그의 모습이 돌아오는 길에 자꾸 떠올랐다.

 

                                                       시민기자  김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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