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중국

중국 여행을 통해서 터득한 세 종류의 여행 방식

아람누리 2012. 8. 15. 22:07

 

 

중국 여행을 통해서 터득한 세 종류의 여행 방식

                                                       By 송덕호 두산그룹 자문역

                                                                                            August 09, 2012 

중국은 1993년 처음 가 보았다. 그땐 중국이 후진국이고 신기한 것이 많다는 정도의 인상 밖에 없었다. 그리고 2003년, 중국에 합작 진출하는 친구 회사의 일을 도와 주면서 다시 중국에 다닐 일이 생겼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잠재력을 느끼게 되고 간단한 나라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고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중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5년 상해의 중구국제공상학원(中毆國際工商學院)에 등록하면서이다. 영어 이름 China Europe International Business School (CEIBS)로 더 많이 알려진 이 학교의 국제반에 들어가 수업을 받기 위해 매달 한 번씩 상해로 날아갔었다. CEIBS의 EMBA 프로그램은 매일 학교를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1회 4일 종일 수업을 듣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서울에 사는 나도 큰 어려움 없이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중국에서 학교는 다녔지만 중국에 살아 본 적은 없고, 여행자의 신분으로 줄곧 중국을 접해 왔다.

중국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중국어 공부도 하면서 시간이 나는 대로 중국의 이곳 저곳을 여행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고 많은 깨달음도 있었다. 앞으로 여기에 내가 보고 느낀 바들을 진솔하게 써내려 가고자 한다. 전문적 내용이 아니라 평범한 이야기들로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행을 하면서 터득한 것인데, 여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고 세 가지 카테고리의 여행이 있다. 하나는 ‘점의 여행’이고 또 하나는 ‘선의 여행’이고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면의 여행’이다.

‘점의 여행’은 일반적인 패키지 여행 같은 여행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보다 많은 관광지를 섭렵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행에 ‘섭렵’이라는 단어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쓰는 ‘찍다’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듯 하다. ‘상해를 찍고 항주를 돌아~’와 같은 표현에서의 찍는 것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러한 종류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가 사진 찍기이니, ‘찍다’라는 표현이 꼭 맞는 것 같다. 신문 광고에 등장하는 7일간 5개국 돌기나 상해 북경을 4일만에 다녀오기 같은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이 범주의 여행이다. 이러한 여행의 장점은 많이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가 볼 수 있고, 비용도 적게 들고, 예약 등의 번거로움도 피할 수 있고...... 그야말로 효율적인 여행이다. 그렇다. ‘효율’이 중요한 요소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하면서 추구하는 그 효율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여행은 떠나면서도 일하는 마음가짐, 사고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상만 바꿀 뿐. 그런데 이러한 패키지 여행을 하면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방식이 여행사 패키지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프로그램을 짜고 준비를 하는 방식의 여행이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 해도 사실은 ‘점의 여행’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즉 주어진 시간 내에 가급적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는 것에 중심이 놓여 있어서 그렇다. 여전히 ‘효율’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는 것이다. 한 목적지에서 또 다른 목적지로 가장 빨리 가야 하고, 그래서 당연히 기차보다는 비행기를 타고, 대중교통수단보다는 택시를 타게 된다. 그리고 방문지에서도 핵심 위치에서 사진을 찍고 빠른 시간 내에 둘러보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매우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와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얼마나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둘러 보았는지를. 자신이 얼마나 생산성 높은 여행을 했는지를.


다음의 여행은 ‘선의 여행’이다. 선의 여행을 하려면 시간에 대한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 즉 보고 싶은 곳들을 다 보고 충분히 체험하기 위해서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외 여행은 귀국하는 비행편을 미리 정해 놓고 나가기 때문에 시간을 조절하지는 못하고, 방문 대상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이러한 여행을 할 수가 있다. 선의 여행은 점의 여행보다 훨씬 여유롭다. 목적지가 있긴 하지만 빨리 가는 것에 구애 받지 않게 되면서 이동하는 과정마저도 여행의 일부가 된다. 작년 친구와 심양 장춘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중국 여행을 많이 해 보지 않았고 중국어도 한 마디 못하였기 때문에 내가 가이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심양에 지인이 있었지만 여행자 자신의 여권이 있어야 기차표를 살수가 있다 보니 예매를 하지를 못했다. 할 수 없이 같이 여행하는 친구와 심양역에 나가 두어 시간 줄을 서서 장춘 왕복 기차표를 구매하였다. 복잡한 역에서 세치기 하는 사람들 속에서 보내는 시간은 지루하고 즐겁지는 않았다. 그런데 중국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는 즐겁고 유익한 중국 여행 기회를 준 데 대해 여러 번 고마움을 표하면서 여행담을 얘기할 때마다 그 두 시간 동안 표 사느라 기다렸던 시간, 대합실에서 기차 기다리던 시간, 그 경험들을 가장 자주 언급한다. 무척 인상 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처럼 비록 효율은 떨어질지 몰라도 여행지에서의 하나 하나의 상황 그 자체를 여행 테마로 생각하고 나름대로 느끼고 즐긴다면 선의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름 붙인 ‘면의 여행’은 어떤 여행일까? 이 역시 효율을 생각하지 않는 여행이다. 그리고 선의 여행과 다른 점은 목적지에 대한 집착을 하지 않는 데 있다. 그리고 여행의 목적을 외면적인 곳에 두지 않고, 내면적인 곳에 두는 데 있다 할 것이다. 선의 여행은 유연하게 조정한다 해도 처음 정한 목적지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면의 여행의 단계로 넘어가면 출발할 때 목적지 계획이 있긴 하지만 그 계획은 현지에 가서 새로운 정보, 새로운 만남, 새로운 느낌에 따라 유연하게 수정된다. 궤도를 달리는 기차가 아니라 어디든지 핸들을 조정하여 달리는 자동차와 같은 여행이 면의 여행이다. 여행을 다니게 되면서 점차 면의 여행 쪽으로 치우치는 것 같다. 특히 혼자서 여행을 하게 되면 완벽한 면의 여행을 하게 된다. 함께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자유로운 목적지 변경은 쉽지 않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 되어야 면의 여행을 즐길 수가 있다.

여행을 왜 하는 것일까?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행태만으로 답할 수 없다. 우리 마음 깊숙한 곳의 어떤 힘에 따라 행태는 영향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간단히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말한다면, 유명한 명소, 자연을 가 보기 위해서라고 말해도 무방하겠다. 그런데 유명한 관광지는 사진도 많이 있고, 비디오 프로그램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직접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이 거짓일까 봐? 말이 안 되는 얘기. 명소에서 내 얼굴이 들어간 사진을 찍기 위해서? 우리의 행태를 보면 틀린 말은 아닌데 그것이 목적이라고 말하기는 썩 내키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을 전개해 가다가, 이제는 생각을 이렇게 정리했다. 내가 모르는, 내가 상상치 못했던 어떤 것을 만나기 위해서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내가 모르는 것을 만나러 가는데 구체적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 그래도 계획은 세우는데 여기서 계획은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을 만나기 위한 미끼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길을 가면서 우연히 만난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거나 부닥친 장면들(유명한 곳이고 아니고는 중요치 않다)을 유심히 본다. 그 사람의 말에서 혹은 어떤 장면에서 어떤 느낌이 떠 오르면 그 느낌에 집중을 하고 생각을 파고들어 간다. 특별히 무엇을 하려고 그리고 생각하려고 의도하지 않으면 온갖 생각들이 내 머리를 지나간다. 그냥 그대로 두고, 마음이 특별히 가는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을 따라간다. 그러다 보면 서울에서의 내 상황이 새로운 각도에서 보이고, 현안 문제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가 떠오르게 된다. 새로운 개념이 떠오르고, 예전에 들었던 어떤 표현들이 새로이 이해되고, 그 과정에서 한없는 희열이 느껴진다. 이 모든 것들이 ‘면의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인 것이다.

앞으로도 중국 여행은 계속할 것이다. 다음 여행지를 어디로 할 것인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또 떠나서 어딘가에서 또 어떤 생각들을 붙잡고 즐기고 있을 것이다. 중국이 큰 나라인 것이 너무나 좋다. 떠나서 헤맬 곳, 새로운 느낌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그 만큼 많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