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다이허(北戴河)의 컨센서스 |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겨울에는 몹시 춥고, 여름에는 매우 덥다. 겨울에는 인근 산시성(山西省)의 풍부한 석탄으로 따뜻하게 보낼 수 있지만 여름이 문제다. 에어컨이 없는 시대에는 베이징의 숨 막히는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을 찾아 갈 수밖에 없다.
베이징에서 동북으로 250km 떨어진 곳에 산림이 울창하고 지대가 높아 여름에도 가을처럼 시원한 곳이 있다. 옛 이름은 열하(熱河)이지만 지금은 청더(承德)라고 부른다. 그곳에는 이름 그대로 “피서산장”이 있다. 청(淸)나라의 강희제(康熙帝)가 여름에 사냥도 하면서 베이징의 더위를 피해 만든 하궁(夏宮)으로 역대 황제들은 이곳에서 여름을 보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19세기 말 중국(淸)이 서양에 개방되면서 서양의 외교관 선교사 사업가들이 베이징으로 몰려왔다. 그들에게도 베이징의 여름은 견딜 수 없었다. 보하이(勃海)만으로 배를 타고 들어 온 서양인들은 베이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름다운 긴 해변이 있음을 알았다.
친황다오(秦皇島)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22.5km의 긴 해안선에 “다이허(戴河)”라는 작은 강이 있다. 현지인들은 이 강을 경계로 북측을 베이다이허(北戴河), 남측을 난다이허(南戴河)라고 불렀다. 베이징에서 동으로 280km 떨어진 곳이다.
1949년 신 중국 건국과 함께 이곳의 별장들은 중국정부의 소유가 되었다. 별장의 위치와 규모에 따라 정부기관과 국영기업체의 요양소(sanatorium)로 개조되었다. 일부 별장(빌라)은 전용 백사장과 함께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시키고 정부(공산당)의 요인들에게 배정되었다.
수영을 좋아하는 마오쩌둥(毛澤東)은 여름이면 당과 정부의 요인들을 데리고 가족과 함께 베이다허를 찾았다. 요인들의 관저가 모여 있는 베이징의 중난하이(中南海)를 그대로 옮겨 놓은 모습이었다. 그들은 같이 수영하고, 같이 저녁먹고 같이 한담하면서 중국을 경영했다. 가족들은 가족들끼리 같이 수영하고, 같이 저녁먹고 수다를 나누면서 유대의식을 가졌다. 가족끼리 친하게 지내다 보면 서로 좋아 결혼하는 자녀도 나오고, 어른들은 사돈이 된다. 과거 어린 시절 이러한 추억을 나누어 가진 요인들의 자녀들을 “태자당”으로 부른다.
우직지계(迂直之計)라는 손자병법처럼 공식적(直)인 것보다 비공식적(迂)인 것이 효과를 볼 때가 많다. 딱딱한 베이징의 사무실에서 잘 안 풀리던 사안도 캐주얼한 베이다이허에서는 합의가 잘 된다. 마오주석이 좋아했던 비공식회의 속칭 “베이다이허 회의”는 문화 대혁명 때 일시 중단되었으나 덩샤오오핑(鄧小平)이 집권하면서 부활되고, 장쩌민(江澤民)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2003년 이후 후진타오(胡錦濤)주석은 이러한 회의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일반 국민들은 생활고에 힘들어 하는데 정부 고위 간부들은 피서지에서 사치스럽게 모임을 갖는 것은 허셰(和諧 조화)사회에 어울리지 않다고 보았다. 그리고 새로운 리더십은 정부의 공식기구를 통해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안후이성(安徽省)의 가난한 차(茶)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후주석은 어린 시절 베이다이허의 기억이 없는데다 베이다이허 회의를 통해 원로들의 입김을 받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지난 7월부터 인구 10만의 베이다이허(秦皇島市 北戴河區)가 부산하다. 공안이 깔리고 보안이 강화되었다. 보하이만의 오염으로 바다 수영을 기피하는 간부들을 위해 정제된 해수(海水)풀장도 따로 준비하였다고 한다.
1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는 당 대회를 앞두고, 정치국원 25명과 상무위원의 선임을 위해 베이다이허 회의가 필요해졌다. 전 충칭시 당서기 보시라이(薄熙來)사건도 터졌다. 전임인 장쩌민(江澤民), 현임의 후진타오(胡錦濤), 그리고 후임 시진핑(習近平) 3자 합의의 “베이다이허 컨센서스”가 이루어져야 한다.
거대 중국의 새로운 10년을 끌고 갈 최고 지도자 인사 결과에 대해, 교황선출의 “콘클라베(Conclave)”처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8월의 첫째 주부터 시작 2주간정도 계속되리라고 한다. 이곳은 하절기 평균 온도가 섭씨 24도이지만 회의기간의 뜨거운 논쟁으로 체감온도는 베이징보다 더 더울지 모른다. 베이징의 외교관들은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보이지도 않는 베이다이허의 “흰 연기”를 주목하고 있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
'떠오르는 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더운 베이징 관광…우산모자 하나면 문제없어 (0) | 2012.08.11 |
---|---|
미국, 남중국해 평화법 발의 (0) | 2012.08.08 |
과학발전이 가져다 준 지난 10년 거대한 변화 (0) | 2012.08.08 |
中國, 상무위원 구성 놓고 정파간 최후의 힘겨루기 (0) | 2012.08.07 |
中國 공산당 全大 앞둔 '베이다이허 회의' 3대 포인트 (0) | 2012.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