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용석]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279㎞ 떨어진 허베이(河北)성의 베이다이허(北戴河). 슬픈 전설을 간직한 이곳에 여름만 되면 중국 최고지도부가 모인다. 일도 하고 휴식도 취하는 제도가 1953년부터 관례화됐기 때문이다. ‘여름 정치의 수도(夏宮)’로 일컬어진다.
이곳서 열리는 베이다이허 회의가 유명해진 건 58년. 그해 대약진 운동과 인민공사 설립 등이 결정됐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집권 후 근검절약 차원에서 베이다이허 회의를 취소한 적이 있지만 이내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등의 반발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각 파벌의 이해관계를 은밀한 협상과 타협으로 조정하기에 베이다이허 회의만큼 좋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베이다이허에 또다시 시선이 쏠린다. 지난주부터 중국 최고지도부가 집결하고 있다. 올가을 열릴 18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차기 지도부 구성을 조율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베이다이허 회의는 7월 23일 시작해 8월 8일 끝났다. 올해도 비슷한 일정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의 최대 관심사는 차세대 집단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어떤 인물들을 선발하느냐 하는 점이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 5월 초 약 300명의 당정 고위 관료들을 대상으로 1차 투표를 실시했다. 각기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5명의 이름을 써내게 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장쩌민을 후견인으로 하는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 출신) 및 태자당(太子黨·고위관료 자제 출신) 세력과 후진타오를 앞세운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세력이 현재 베이다이허에서 치열한 막후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이들 싸움의 한복판엔 현재 9명인 정치국 상무위원을 7명으로 줄이느냐, 아니면 현행 체제를 유지하느냐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다수 후보자를 가진 장쩌민 세력은 9명을, 확실한 소수 후보자를 가진 후진타오 계열은 7명을 주장한다.
장쩌민 측은 복잡한 현대 국가의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선 보다 많은 정치국 상무위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후진타오 측은 업무 효율을 위해 인원을 줄이자고 말한다. 각기 자파가 우위를 점하기 위한 변이다. 역대 정치국 상무위원은 가장 적을 때가 3명, 많을 때는 11명이었다. 평균적으론 6~7명이었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우리가 주목할 게 있다. 집단 지도부를 꼭 유지해야겠다는 중국의 정신이다. 배경엔 마오쩌둥(毛澤東)의 1인 독재가 야기한 폐해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깔려 있다.
이같이 미묘한 시점인 지난달 중국 칭화(淸華)대 국정연구센터 주임인 후안강(胡鞍鋼)이 글 하나를 발표했다. ‘눈부신 10년, 중국 성공의 길은 어디에 있나’라는 제하에서 후안강은 중국이 세계 2위로 올라서게 된 주요 원인이 ‘정치국 상무위원회’라는 중국 특유의 ‘집단 대통령제(集體總統制)’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집단 대통령제는 다섯 가지 특징을 갖는다. 집단으로 학습하고, 집단으로 연구하며, 집단으로 결정하고, 집단으로 업무를 나눠 협력하며, 집단으로 세대교체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정보를 확보할 수 있고, 또 보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국가를 경영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이 세계적 금융위기 등 수많은 난제를 극복하고 이렇다 할 정책적인 실수 없이 순항할 수 있었던 데는 바로 집단 대통령제가 있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서구의 ‘1인 대통령제(個人總統制)’보다 더 민주적이고, 더 협조적이며, 더 효율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후의 글이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해외판의 1면에 실렸고, 그 자신이 중국 최고지도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학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 그의 말은 중국 지도부의 의중을 대변한 것으로 관측되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후의 주장에 대해 중국 내에서도 반론이 나온다.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헌법을 초월하는 기구처럼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가 ‘집단 대통령’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강조하고 있는 건 바로 중국의 정치 시스템이 집단 지성을 활용하는 집단지도체제라는 점이다.
5년 단임의 대통령을 그저 천수답(天水沓)처럼 성군(聖君)과도 같은 인물이 뽑히기만을 고대해야 하는 우리 정치 지형으로선 생각할 대목이 많다. 과거 공자의 후손들이 안채를 나설 때마다 하인들은 “어르신, 너무 탐욕스럽습니다”라고 외쳤다 한다. 교만을 막기 위한 자기제어 장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