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행주대첩제
행주대첩은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 김시민 장군의 진주성
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 대첩(大捷)의 하나이다.
행주산성은 우리 민족의 수난기였던 임진왜란 당시 , 전라도 순찰사로 있던 권율 장군이 정병 2,300명과 승병, 농군을 지휘하여 왜적을 물리친 빛나는 승전지로서 임진왜란 3 대첩중의 한 곳이기도 하며 , 특히 이 전투에서는 연약한 부녀자들 까지 덧 치마에 돌을 날라 석전(石戰)의 공을 세움으로서 , 오늘 날 행주치마의 유래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자랑스러운 국방 유적이 세월이 흘러 기록으로만 전해졌으나 1970 년대 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 권율 장군의 사당인 충장사(忠莊祠)를 비롯한 20 여종의 각종 유적을 정화하여 우리 조상들의 호국정신을 배우는 도량으로 계승하고 있다.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당시인 1593 년 2 월 12 일 (양력 3 월 14 일 ) , 전라도 순찰사 권율 장군이 지휘하는 2,300명의 조선군이 왜군 3 만명을 물리친 자랑스러운 대첩을 말한다.
오전 6 시에 사작된 전투는 총 7개의 부대로 이루어진 왜군과의 총력전이었으며 10 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왜군은 1 만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후퇴하였다. 당시 대첩은 관군, 의병, 승병, 부녀자에 이르기 까지 온 백성이 혼연 일체가 되어 이룩한 승리 였으며 , 이 승리의 결과 왜군은 완전히 사기를 잃고 한성에서 철수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한 , 조선군은 그 동안의 수세에서 벗어나 공세를 갖추게 되었고, 조선군이 가지고 있던 많은 무기에 대한 강한 신뢰감을 갖게하는데 ,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행주대첩은 우리의 역사상 국난 극복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중의 하나이며, 그 애국정신과 행주얼은 후손에게 길이 전해 질 것이며, 고양시는 이러한 민족정신을 길이 전하고자 매년 , 행주대첩제와 행주문화제를 열고 있다.
제전행사
아래 사진은 충장공 권율 도원수의 영정을 모신 , 충장사로서 권율장군의 공덕과 얼을 되새기기 위하여
1970년에 축조된 사당이다. 이 곳에서는 매년 3 월 14 일에 행주대첩을 기념하는 행주대첩 제전행사를 봉행한다. 2007년 3 월 14 일에도 어김 없이 이곳에서 행주대첩 제 414 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 날 행사에는 강현석 고양시장이 초헌관(初獻官)으로, 고양시의회 의장이 아헌관(亞獻官)으로,
그리고 유림(儒林)대표가 종헌관(終獻官)으로 참석해서 제례를 치루었다.
천도행렬
아래 사진은 충장사의 아래 마당에서 봉원사 구해스님외의 많은 스님들이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인 천도행렬을 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가장행렬
아래 사진은 행주대첩제 행사중에서 권율 장군과 의병들(흰색 옷, 행신초등학교 어린이들)의 가장 행렬이다.
마상무예
아래는 마상(馬上)무예 장면, 사실은 여러가지 묘기가 수시로 펼쳐 졌으나, 동영상이
아닌 스틸 사진에다가 아머튜어 실력으로는 여러 묘기를 순간적으로 포착할 수가 없어서 매우 안타까웠다..
창작검무
아래는 개교한지 얼마 되지 않는 고양예술고등학교 무용단(12 명)이 우리 선열의 위대한 정신을 표현한 창작검무 모습
경기민요
경기지방을 중심으로 불려진 민요인 경기민요 ,
중요 무형문화재 제 57 호 경기소리 준보유자 ( 김혜란, 이호연 )등의 열창 모습
군악
전쟁터의 군사의 늠름한 기상과 승리후 축제를 전통 타악으로 표현한 세원고등학교 연극부 학생들( 17 명)의 군악 연주 장면.
태권무
태권동작을 율동에 맞춰 연출한 무예문화진흥회 무혼팀 (12명)의 태권무 장면.
장군복, 병졸복 시연
행주대첩당시의 복장 및 군례를 재현한 장군과 병졸 /육군 권율부대 장병들의 시연임.
고양의 소리
고양시에서 전승되어 내려 오는 소리를 시연한 " 고양 들소리 보존회 (30 여명) " 의
영산재
아래는 봉원사의 구해스님외의 10 명이 연출하는 영산재 모습.
산자와 죽은자가 다 함께 진리를 깨달아 이고득락의 경지에 이르게하는 장엄한 불교 의식
영산재에서 춤을 추는 스님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