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중국

70년 시간의 흔적, 70년의 발전사

아람누리 2019. 10. 1. 16:42




            70년 시간의 흔적, 70년의 발전사


                                                                               September 30, 2019



위: 1949년 10월 8일 헤이룽장(黑龍江)성 너허(訥河)시에서 추수가 한창이다. 아래: 2019년 5월 31일 산둥(山東)성 지닝(濟寧)시 자샹(嘉祥)현 중산(仲山)진에서 로볼(LOVOL, 雷沃) 회사 직원이 원격 조종으로 자동 수확 작업을 하고 있다. 지금은 자율주행시스템이 설치된 무인자율주행수확기로 정확한 위치를 설정해 자동으로 경로를 정하고 무인으로 작업을 할 수있다. 손으로 하던 수확작업에서 스마트화 자동화 수확이라는 기술의 진보는 농민을 힘든 밭일에서 점점 해방했다. [사진 출처: 신화망]

[인민망 한국어판 9월 30일] 70년의 시간 동안 업계는 끊임없이 변해왔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평범한 직무에서도 꾸준한 중국인의 분투 의지다. 착실하게 꿈을 좇는 노동자들은 신중국의 아름다운 미래 창조자이자 수호자이다. 모든 중국인, 그들 하나하나의 평범한 노력이 평범하지 않은 자신과 평범하지 않은 중국을 만든다. 국가통계국 데이터에 따르면 1952년 중국 국내총생산은 679억 위안(약 11조 4378억원)에 불과했지만 2018년 중국 경제는 90조 위안을 돌파했다. 70년 동안 중국은 폐쇄적 후진에서 개방적 진보로, 추위와 배고픔에서 전면적인 샤오캉(小康•중산층) 사회로, 오랜 시간의 가난과 쇠약에서 번영과 부강으로 인류 발전사의 위대한 기적을 기록했다. (번역: 하정미)

                                                      원문 출처: 신화망(新華網)





위: 1950년 랴오닝(遼寧) 안산(鞍山) 근로자병원 의료진이 신생아의 체중을 재고 있다. 아래: 2019년 7월 19일 네이멍구(內蒙古) 후허하오터(呼和浩特) 네이멍구자치구 인민병원 신생아실의 양샤오링(楊曉玲) 수간호사(오른쪽)와 동료가 멀티 인큐베이터에서 신생아의 체중을 재고 있다. 신중국 신생아 의료 수준은 진보했으며 신생아 의료진 근무 조건도 변했다. 네이멍구자치구 인민병원 신생아과에는 신생아 중환자실을 설치해 수입 호흡기와 방사선구급대, 폐쇄형 인큐베이터 등 최신 설비를 갖추었다. [사진 출처: 신화망]





위: 1952년 후난(湖南)성 리링(醴陵)시 사법기관 직원(왼쪽)이 바이투탄(白兎潭) 촌민 취안위성(全裕盛•가운데)과 쑨구이화(孫桂華)에게 결혼증을 건네주고 있다. 아래: 2019년 6월 25일 후난(湖南)성 리링(醴陵)시 쑹완전(宋宛眞) 민정국 직원이 등록하러 온 류량(劉亮•오른쪽)과 판링즈(範靈芝)에게 결혼증을 건네주고 있다. 리링 민정국 직원은 현재 과학적이고 규범적이고 편리한 실시간 혼인 등록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출처: 신화망]





위: 1951년 베이징시 우정관리국에서 여성 우체부 세 명이 아침 일찍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래: 2019년 6월 26일 베이징시 첸먼(前門) 스터우(石頭) 후퉁(胡同: 골목)에서 중국 대표 택배업체 순펑(順豐) 택배점에서 직원 류쿼(劉闊)가 전동차로 택배를 배달하고 있다. 과거에는 우편 배달부 대부분이 녹색의 무거운 자전거를 타고 하루 백 통에 달하는 편지를 배달했다. 최근에는 전자 통신과 전자 상거래의 발달로 편지 배달은 적어지고 소포 배달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택배가 많을 때면 택배 직원 한 명이 삼륜차로 하루 백 건에 달하는 택배를 배달한다. [사진 출처: 신화망]





위: 1953년 국영톈진자전거공장에서 나이든 직원이 신입에게 부품 장착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래: 2019년 7월 9일, 허베이(河北)성 싱타이(邢臺)시 완이(萬怡)자전거광쭝(廣宗)회사 기술자가 조립 라인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자전거 왕국’이라 불리는 중국인 만큼 자전거는 중국인의 일상 생활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최근 공용 자전거는 친환경과 공용경제를 대표해 사람들의 생활에 폭넓게 스며들었으며 자전거와 인터넷 기술의 결합으로 새로운 활력을 뿜어내고 있다. 허베이(河北) 광쭝(廣宗)의 자전거 생산 업체들은 40여 년의 발전을 통해 가정 생산 방식에서 규모화 생산으로 탈바꿈 했으며 자전거 자동 조립 라인으로 생산 효율을 높였다. 이 제품들은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대량 수출 중이다. [사진 출처: 신화망]




위: 1954년 파미얼(帕米爾, 파미르)고원 신장(新疆) 우차(烏恰)현 목장 의료진이 키르기즈족(柯爾克孜族) 부녀의 요청을 받고 왕진을 왔다. 아래: 2019년 7월 7월 신장(新疆) 타스쿠얼간타지커(塔什庫爾幹塔吉克)자치현 다부다얼(達布達爾)향 러쓰커무(熱斯喀木)촌 의사 파얼야터•타시바이커(發爾亞特•塔西白克•오른쪽 세번째)와 향촌 보건소 의료진이 러쓰커무촌 빈곤 구제 지역에서 출장 진료를 하고 있다. 과거에는 말을 타고 산속 깊은 목장으로 회진을 돌았지만 이제는 정기적으로 가구 밀집 지역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과거에는 간단한 상비약만 준비했지만 현재는 다양한 종류의 약품을 구비하고 있다… 신장 목장의 의료 환경과 수준은 대대적으로 개선되었으며 목민들은 점점 편리하게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사진 출처: 신화망]






위: 1958년에 촬영한 중국제일기차(中國第一汽車)제조공장. 이 곳에서 첫 번째 훙치(紅旗) 승용차를 생산했다. 아래: 2019년 4월 9일 직원이 훙치 조립 작업장에서 생산된 차량을 점검하고 있다. 60여 년 전, 신중국 자동차 공업은 부흥을 기다렸다. 선대 자동차 엔지니어들은 창춘(長春)에 중국제일기차제조공장(현재 중국제일기차집단유한공사•FAW)을 세우며 중국 자동차 공업 발전의 서막을 열었다. 현재 차세대 ‘자동차 엔지니어’들은 끊임없이 기술을 닦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리며 자체 브랜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8년 중국 자동차 생산량과 판매량은 각각 2,780만 대와 2,808만 대로 10년 연속 세계 1위다. [사진 출처: 신화망]




위: 1958년 산둥(山東)성 가오탕(高唐)현 방직공이 수공예 방적기로 천을 짜고 있다. 아래: 2019년 6월 25일 산둥성 가오탕현 차오웨(超越)방직회사에서 직원 톈구이란(田桂蘭)이 차세대 스마트 정방기를 사용해 그래핀 실로 방적 작업을 하고 있다. 과거 지저분하고 어지러운 작업장에서 질서정연한 작업장으로 낙후된 방직기에서 선진의 방직 라인으로, 단일 품종에서 복잡 다양한 방직 생산품으로 중국 방직 근로자들은 방직 산업의 변모하는 모습들을 드러낸다. [사진 출처: 신화망]




위: 1959년 신장(新疆) 커라마이(克拉瑪依) 유전 직원이 9호 집유(集油)구역에서 건설 작업을 하고 있다. 아래: 2019년 1월 15일 신장 유전회사 펑청(風城)유전작업구역 근로자 쑨성(孫晟•앞)과 왕샤오둥(王曉東)이 중18정구에서 유정 생산량 증가 조치를 실행하고 있다. 신중국 수립 초기 국제 수출 금지와 ‘중국 빈유론(中國貧油論)’으로 중국 지질학자들과 석유 전문가들은 원유 채굴에 나섰다. 1955년 신장에서 커라마이 유전을 발견하면서 중국 공업 원유 사용의 급한 불을 껐다. 1959년 헤이룽장(黑龍江)에서 다칭(大慶) 유전을 발견하며 중국은 ‘중국 빈유론’에서 벗어났다. 현재까지 커라마이에서는 17년 연속 해마다 1000만톤 이상의 유전과 가스를 생산했다. 스마트 유전 건설도 가스 생산에 신동력을 불어 넣었다. 커라마이는 ‘원유로 살고 원유로 부흥한다’는 원유 도시로써 대대로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커라마이인으로 인해 도시는 나날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생활 수준이 올라가 ‘일대일로’의 빛나는 구슬 중 하나가 되었다. [사진 출처: 신화망]



위: 1954년 우한(武漢) 대학교를 졸업한 샤오스잉(肖時英•오른쪽)과 장무란(張木蘭) 부부가 윈난(雲南) 야생 차나무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래: 2019년 5월 27일 86세의 샤오스잉(왼쪽 두 번째)이 윈난 푸얼(普洱)시 현대 생태 유기 차밭에서 학생들과 현장 실습을 하고 있다. 1950년대 현재의 푸얼차 주 생산지인 윈난성은 대부분이 야생 차 나무로 우량종은 부족하고 생산량은 적다. 샤오스잉과 장무란은 공화국이 길러낸 첫 번째 대학생으로 산 넘고 물 건너 변방으로 왔다. 수십 년 동안 그들은 기초부터 깊이 파고들어 차 씨앗 묘종, 차 나무 꺾꽂이, 차 나무 접목 등 다양한 번식 방법을 연구하고 차밭의 규모화와 번식 발전중인 묘종의 공급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했다. 오늘날 윈난성 푸얼시 토지 이용률과 찻잎 생산량은 대폭 상승했으며 다품종조합재배의 ‘입체생태차밭’은 풍부한 수확량으로 차밭의 종합 경제적 이익을 높였다. [사진 출처: 신화망]